[영상] 세찬 빗줄기, 뜨거운 태양…유난히 혹독한 달동네의 여름
[영상] 세찬 빗줄기, 뜨거운 태양…유난히 혹독한 달동네의 여름

 

[오프닝]

“여기 해놓은 거 보세요. 몇 년 전에 비, 수해 때문에”

“(불이) 자주 났죠. 한 번 나면 뭐 거의 다 타다시피 하지. 지구(구역)마다”

“(에어컨) 있는 사람이 10집 중에 한 두세집만 있어요.”


[본영상]

여름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무게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더위도, 비도 이 골목에서는 한층 더 거셉니다. 유난히 모진 달동네의 여름, 그곳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물러설 틈 없이 쏟아지는 빗속, 서울의 한켠에는 버텨내야만 하는 여름이 있습니다. 7월 16일, 장대비가 퍼붓던 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 달동네를 찾았습니다.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그 말 너머에 있는 삶이 궁금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마을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젖은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고 그늘 아래 누군가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곳곳에 쌓여있는 연탄, 낡은 가스통, 비닐과 덧댄 판자로 임시방편을 한 지붕. 빗물이 새고, 흘러들고, 고입니다.


“여기 해놓은 거 보세요.”

“몇 년 전에 비, 수해 때문에”

“(물이) 앞에서 치고 들어오니까 그렇게 되죠.”

 

4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한 주민이 말합니다. 집의 문들은 바닥과 맞닿아 있습니다. 물이 조금만 차올라도 순식간에 집안이 잠기고 맙니다. 벽지는 젖어 얼룩졌고 곰팡이는 퍼져갑니다.


“많이 젖으면 안 붙지.”

“젖은 연탄은 힘들지.”


깨진 창문과 물이 새는 천장 아래에는 연탄이 쌓여있습니다. 아직도 이 마을의 많은 집에서는 연탄불로 밥을 짓고 가스통으로 불을 지핍니다. 하지만 비가 내려 연탄이 젖게 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곳의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불과 며칠 전 이 마을엔 불길이 삼켜버린 흔적이 남았습니다. TV 위로 피어오른 연기, 그것이 불씨가 되었고 그 방엔 누군가 실제로 살고 있었습니다.


“(불이) 자주 났죠.”

“한 번 나면 뭐”

“거의 다 타다시피 하지. 지구(구역)마다”

“한 번 붙으면 쫙 붙어나가니까.”

“초창기에 못 잡으면 다 붙어버려요.”


집과 집 사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 작은 불씨 하나면 한 사람의 집이 아니라 동네 전체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됩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 골목엔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산 하나 들고 지나가기도 빠듯한 좁은 골목, 소방차가 진입조차 할 수 없는 길입니다.


올해 2월, 이 마을에서도 불이 났습니다. 라면을 끓이다 시작된 불길이었습니다. 이웃들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며 물바가지를 들고 뛰어다녔지만 불길은 너무 빠르고 골목은 너무 좁았습니다. 결국 80대 노인이 안타깝게도 불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고 이후 동네 구석구석엔 비상소화시설이 생겼지만 큰 불을 막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시설입니다. 불이 나면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불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7월 24일, 다시 찾은 산자락의 달동네. 걸음을 옮길수록 숨이 턱 막히고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습니다.


“더운데 집에 잘 안 있죠.”

“(에어컨) 있는 사람이 10집 중에”

“한 두세집만 있어요.”

“별로 없어요.”


이 마을에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집은 10집 중 2, 3집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그저 문을 열고 생활하며 하루를 버팁니다.


“70대도 좀 젊은이죠 이 동네에서는. 80, 90대가 많죠, 노부부들이 많아요.”


“솔직히 좀 걱정되죠. 제가 지나갈 때도 어지럽고 힘들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이쪽에 사시는 분들은 어르신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폭염 피해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을을 지나가던 시민의 말처럼 이곳의 더위는 젊은 사람도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실제로 이날 서울에는 체감기온이 35도를 넘었고 달동네의 좁은 골목과 양철 지붕 아래는 그보다 더 뜨거운 공기가 가둬져 있었습니다. 달동네와 도심 아파트의 표면 온도는 최대 30도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이곳의 집들은 여름 한가운데에 놓여있습니다.


이곳의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닙니다. 이 골목, 이 집들,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이 여름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서울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서울 한켠 공포의 여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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