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시행되는 ‘수업 중 스마트폰 금지법’을 두고 일선 교사들과 학무모들 사이에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금지만 시켜놨을 뿐 처벌 기준은 학교 재량에 맡겨놓은 탓에 강제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진학이나 학교의 처벌 기준에 대한 일부 학부모들의 반발 때문에라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고 종국엔 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전히 해당 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는 점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금지만 시켜놓고 처벌 내용은 없는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법’ 두고 실효성 논란 가열
지난 8월 27일 초중고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내년 3월부턴 학생들 전국 초·중·고교 학생들의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된다. 교사의 교육활동과 학생의 학습권 보호, 스마트폰 중독 예방 등의 취지다. 개정안에는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해서라면 교내 스마트기기의 사용·소지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업 중 사용 금지 외에 교내 사용 자체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함께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와 교사,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번 개정안이 학생들의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소지를 제재하도록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처벌 규정은 학교에 떠넘기는 식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개정안에는 ‘스마트폰 사용·소지를 제한하는 경우 제한 기준·방법, 스마트기기의 유형 등 필요한 사항은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고만 명시됐을 뿐 법을 어겼을 때 처벌 방식이나 기준과 관련된 내용은 빠져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인 김모 씨(41·여)는 “지금도 스마트폰 사용·소지 제한을 학칙으로 규정하는 학교가 많이 있지만 정작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며 “학칙을 어겼을 때의 처벌 수위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제재 자체의 법적 근거가 있더라도 처벌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학부모가 학교의 처벌 수위를 가지고 문제를 삼으면 결국 학교는 꼬리를 내리거나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 씨(34·여)는 “학교 입장에선 아이들의 미성숙함과 앞으로의 미래, 교육의 취지 등을 생각해서라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며 “체벌금지법, 소년법 등 ‘미성숙한 아이들의 인생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법들이 즐비한데 스마트폰 몰래 썼다고 수위 높은 처벌의 잣대를 들이댈 학교가 몇이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최소한의 법적 처벌 기준이 없으면 사실상 법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부연했다.
“상급학교 진학, 입시 등 처벌 수위 정하기도 애매모호…결국 상징적인 법 그칠 것”
학부모들의 반응은 더욱 회의적이었다. 여전히 해당 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팽팽한데다 설령 찬성한다 해도 본인 자녀가 법을 어겼을 때는 학교 측의 제재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유명무실한 법이 될 것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중학생 자녀를 둔 이지윤 씨(45·여·가명)는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솔직히 내 아이가 학칙을 어겨 처벌을 받는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며 “학교가 정한 처벌 기준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고 필요하면 다른 학교와 비교하면서 항의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생 1학년 3학년 자녀를 둔 박상준 씨(48·남)는 “스마트폰 소지·사용 보다 더욱 심각한 학폭 관련 사안에도 어떻게든 처벌 수위를 낮추려는 게 요즘 부모들인데 과연 스마트폰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면 가만히 있겠나”라며 “별도의 법적 처벌 기준까지 있는 학폭 마저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법적 처벌 없이 오로지 학칙으로만 처벌 수위를 정하는 스마트폰 소지·사용이 과연 지켜질 지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일찌감치 스마트폰 금지법에 반대해왔다는 주선희 씨(39·여·가명)는 “스마트폰 사용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법으로까지 금지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스마트폰 때문에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삼을 생각이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처벌 기준에 대해서는 학교 재량이라는데 그럼 어떤 학교에선 그냥 넘어가고 어떤 학교에선 정학을 받을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니냐”라며 “대입은 전체 학교 학생이 경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아마 학교에서도 강한 처벌 기준을 세우진 못할 것이고 자연스레 법 자체가 유야무야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미 학교 내 스마트폰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거나 관련 법을 추진 중인 선진국에서도 처벌 기준을 함께 마련하거나 뒤늦게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업 중 스마트폰 금지법에 대한 회의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지역에서 추진 중인 학교 내 스마트폰 금지법의 경우 법을 어기면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학생에게 정학 조치를 내리도록 하는 처벌 규정이 함께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당 법안이 상징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학교의 처벌 자체가 상급학교 진학이나 대입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수위 높은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범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스마트기기 소지·사용 위반 시 어떻게 제재를 가해야 하는 지를 학칙으로 정해야 하는데 학생들의 미래나 학부모들의 반발 때문에라도 선언적인 수준의 상징입법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중기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법은 실질적인 작동력을 가져야 의미가 있다”며 “처벌 규정 없이 금지만 선언한 이번 법은 결과적으로 책임을 학교 현장에 떠넘겨 오히려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특히 입시 교육에 목숨을 거는 구조인 만큼 학생에게 부여된 처벌이 곧 상급학교 진학이나 대입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학교가 강한 제재를 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학교 현장 분위기만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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