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권에서도 아파트 단지명 교체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에는 브랜드 통합이나 관리 편의 차원에서 개명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집값 상승을 노린 ‘이미지 전략’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특히 중소 건설사 아파트나 준공 10년 이상 된 단지들이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고급스러운 명칭을 붙여 새 옷을 입고 있다.
현행 국내 아파트 명칭 변경은 입주민 80% 이상 동의와 시공사 동의, 관할 지방자치단체 심의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명을 추진하는 단지가 늘어나는 것은 이름이 곧 집값과 직결된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파트 명칭이 단순한 주소의 표식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자산 가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GTX 호재에 ‘인덕원’ 단지명 유행…2km 떨어진 의왕까지 확산
2021년 6월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인덕원역에 GTX-C 노선 정차가 확정되자 인근 아파트 단지들은 앞다퉈 단지명 변경에 나섰다. 월곶~판교 복선전철(월판선), 인덕원~동탄선(인동선) 신설에 기존 지하철 4호선까지 더해지며 ‘쿼드러플 역세권’으로의 확장이 예상되자 ‘인덕원’이라는 지명이 강력한 프리미엄 키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후 인덕원역에서 2km 이상 떨어진 의왕시 내손동 일대 아파트들까지 최근 5년 사이 모두 단지명에 ‘인덕원’을 포함하게 됐다. 2021년 7월 ‘의왕 포일자이 아파트’는 ‘인덕원 센트럴 자이 아파트’로 ‘의왕내손이편한세상’은 ‘이편한세상인덕원더퍼스트’로 이름을 바꿨다. ‘포일 센트럴 푸르지오 아파트’ 역시 입주 전부터 ‘인덕원 푸르지오 엘 센트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단지명에 인덕원을 붙인다고 가격이 오르겠냐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거래 결과는 달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인덕원 센트럴 자이는 ‘포일 자이’ 시절 전용 26평형이 9억8500만원에 거래됐으나 최근에는 11억원까지 올랐다. 개명 이후 동일 평형 기준 최대 1억원 이상 상승한 것이다.
지난 2022년 6월 ‘이편한세상인덕원더퍼스트’로 이름을 바꾼 내손이편한세상도 전용 26평형이 당시 9억1000만원에서 최근 9억7000만원에 거래되며 6000만원 가량 상승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정부의 6.27 대출 규제 이후 가격이 일시적으로 주춤했지만 단지 앞 월판선 역 신설이 예정된 만큼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공인중개사 김은경 씨(49·여)는 “현재 인덕원역은 4호선만 지나가지만, GTX-C 노선과 월판선·인동선까지 들어서면 쿼드러플 환승역이 될 것”이라며 “역 주변 복합 환승센터 개발까지 예정돼 있어 역에서 거리가 있는 단지들도 ‘인덕원’이라는 이름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평촌이 인기 지역명이었지만, 최근에는 인덕원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다.
20년 넘은 아파트에 ‘광교’ 이름 붙였다…“개명 후 집값 상승”
광교신도시는 2004년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으로 시작해 이듬해 개발계획이 승인됐다. 이후 수원시·용인시·경기주택도시공사가 공동으로 6단계 개발을 거쳐 지난해 말 준공을 마쳤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광교’라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자 용인시 일부 지역에서는 광교신도시가 아님에도 단지명에 ‘광교’를 붙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용인시의 ‘웅진스타클래스 아파트’는 ‘광교마을 46단지 광교스타클래스’로, ‘상현마을 2단지 아이파크’ 역시 ‘광교 상현마을 현대아파트’로 바뀌었다. 개명 과정에서 동 번호도 ‘101·201동’ 체계에서 ‘46xx’ 또는 ‘47xx’ 체계로 전환됐다. 이는 광교신도시 생활권에 속한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흐름은 인근에 있는 많은 단지로도 확산했다. 비슷한 시기 아파트에 ‘광교’ 혹은 ‘포레’, ‘에듀’ 등을 붙이는 개명 열풍이 이어진 것이다. 지난 2020년 10월에는 ‘성원상떼빌3차’ 아파트가 ‘광교상떼빌파크뷰’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동 번호도 ‘48xx’로 변경했다. 맞은편에 있던 쌍용아파트 역시 ‘광교쌍용포레듀엔’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동 번호를 ‘49xx’로 변경했다.
단지명 개명 이후 집값에도 변화가 있었다. 광교상떼빌아파트의 경우 개명 전인 2020년 7월 전용 32평형이 5억9700만원에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7억8000만원으로 뛰었다. 광교쌍용포레듀엔도 같은 해 6월 전용 31평형이 4억7000만원에 거래됐으나 최근 6억7300만원에 거래되면서 약 2억원이 올랐다.
공인중개사 유혜선 씨(56·여)는 “처음에는 지어진지 20년이 넘은 아파트에 광교와 거리가 있는데 이름만 붙여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반응이 많았다”며 “그러나 개명 이후 가격 상승과 함께 광교 생활권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자 지금은 긍정적인 평가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공’ 대신 ‘센트럴·포레파크’…구축 아파트의 성공적인 새 옷 입기
과거 대규모 단지임을 강조하는 기능으로 각광받았던 단지 명 뒤 1차, 2차 등의 표현은 낡은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센트럴 ▲파크 ▲아르떼 ▲첼리투스 ▲더클라스 등 외래어 표현이 ‘고급화’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수원시 영통구의 ‘황골주공1단지’는 ‘영통포레파크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7년 입주를 시작한 28년차 구축 아파트로, 청명산과 영흥수목원, 도시숲생태공원 등 인근 녹지를 고려해 새 이름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맞은편 ‘황골주공2차아파트’도 올해 1월 ‘영통센트럴파크뷰’로 개명했는데, 이 단지는 1999년 입주한 26년차 아파트로 청명산과 공원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기존 ‘황골’ 대신 지역명인 ‘영통’을 넣어 입지를 부각시켰다.
아파트명이 ‘주공’에서 ‘포레파크원’과 ‘센트럴파크뷰’로 바뀌면서 집값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영통황골주공1단지는 지난해 6월 전용 18평형이 3억8450만원에 거래됐으나 영통포레파크원으로 이름이 바뀐 뒤 이달에 4억3500만원에 거래됐다. 황골주공2차 역시 1월 전용 18평형이 3억7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영통센트럴파크뷰로 바뀐 이후 이달에는 최고 4억3000만원에 거래되면서 불과 6개월 사이 수천만원이 올랐다.
공인중개사 최경애 씨(66·여)는 “지어진 지 30년 가까운 구축 아파트다 보니 이미지 변신을 위해 이름을 바꿨다”며 “아파트 이름과 가격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몇 천만원의 차이를 보면 시장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이름이 바뀐 뒤 단지명을 보고 방문하는 신혼부부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름 변경이 집값 상승의 직접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부동산분석학회에 따르면 단지명을 인지도 높은 브랜드로 바꾼 경우 평균 7.8%의 가격 상승 효과가 나타났지만 이 역시 심리적 요인과 기대감에 기반한 제한적 효과라는 것이다.
유정석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아파트는 주거의 가치보다 자산적 가치가 컸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곳이 나의 사회적 가치를 말해준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 같다”며 “실제로 고급스럽게 이름을 지으면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지만 단기적인 집값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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