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General Motors)의 핵심 연구·개발 법인 ‘지엠 테크니컬 센터 코리아(이하 GMTCK)’가 연구 인력을 부평공장에서 청라연구소로 이전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GM은 최근 불거진 ‘철수설’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업계에선 부평공장 철수를 위한 사전작업에 돌입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3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GMTCK는 추석 연휴 이후 일부 연구원 인력을 청라연구소로 이전한다. 가장 먼저 이동하는 부서는 해석팀 약 300명이다. 해석팀은 자동차 제조 및 부품 생산 전 단계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 진행을 담당하는 팀이다. 이후 다른 부서도 순차적으로 이전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GMTCK는 2019년 한국GM에서 인적 분할돼 설립된 법인으로 GM 내 미래차 연구·개발(R&D)을 담당한다. 분리 당시에도 한국GM 철수설이 확산된 바 있다. 현재 직원 수는 약 3000명이며 부평공장과 청라 양쪽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 인력 이동을 부평공장 가동 중단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연구 인력이 빠져나가면 부평공장 부지에 남는 것은 생산시설뿐이다”며 “생산시설만 남게 되면 공장 정리 작업은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GMTCK가 연구 인력을 별도로 이전하는 배경에는 ‘인재’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독일·일본·미국과 함께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 강국으로, 우수한 연구 인력이 다수 포진해 있다. 또 독일·일본 대비 연구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 때문에 생산시설 철수가 이뤄지더라도 연구소만 남겨 국내 연구 인력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이유로는 GMTCK가 국내 중소기업과의 협업 플랫폼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하청을 맡는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도 크다. 자동차 산업은 복잡한 공급망을 필요로 하는 특성상 하청업체의 기술력이 핵심이다. 국내 부품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GMTCK가 한국에 남는다면 생산과 무관하게 이들 기업과의 협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부평공장 협력업체의 한 대표는 “GM이 한국에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요소는 ‘인재’와 ‘공급망’이다”며 “국내 자동차 업계는 세계적 수준인데 비용은 매우 낮은 편이다”고 말했다. 이어 “GMTCK가 연구 인력과 협업 플랫폼 역할만 유지한다면 생산시설을 반드시 두어야 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GM은 철수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지만 연구 인력 이동 외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은 적지 않다. 지난 5월 한국GM은 전국 9개 직영 서비스센터와 인천 부평공장 일부 부지 매각 논의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패밀리카 3종의 신차 개발이 전면 중단됐다. 2023년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 출시 이후 사실상 신차 출시가 멈춰 있는 상태다.
내수 판매 부진도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GM 판매량은 2만5000대에 그쳐 전년 대비 35.9% 감소했다. 올해 1~8월 판매량 역시 전년 동기 대비 약 40% 급감했다. GM 입장에서 한국 생산시설을 고집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GM은 과거에도 수익성이 낮은 시장에서 연이어 철수한 전례가 있다. 호주·태국·인도·유럽 등에서 내수 판매 부진을 이유로 사업을 정리했다. 당시에도 GM은 철수설을 부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한국GM 역시 2019년 군산공장을 매각했고 2022년에는 부평 2공장을 폐쇄했다.
한국GM 관계자는 “업계 환경 변화에 따라 조정 가능성은 존재하나 아직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며 “토지 매각이나 프로젝트 중단 또한 철수설과 연관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 환경 자체가 한국GM 철수를 앞당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됐다”며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차량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대내적으로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까지 통과돼 GM 입장에서는 한국 사업장의 리스크가 크게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