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풀렸지만 안심하긴 일러”…트럼프 변덕에 ‘불안한 평화’ 우려
“비자 풀렸지만 안심하긴 일러”…트럼프 변덕에 ‘불안한 평화’ 우려

한미 양국이 조지아주 현대차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구금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비자 협의를 이뤘지만 마냥 기뻐하긴 이르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거 행보를 감안할 때 언제든 정책이 뒤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합의된 B-1(사업 비자)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철회될 수 있는 만큼 근로자들은 불법체류자로 분류돼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30일(현지시각) 한국과 미국 정부 대표단은 워싱턴 D.C.에서 ‘한미 상용 방문 비자 워킹그룹’을 공식 출범시키고 1차 협의를 진행했다. 미국 측은 국내 기업들이 현지 투자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해외 구매 장비의 △설치(install) △점검(service) △보수(repair) 활동을 위해 B-1 비자를 활용할 수 있으며 무비자 ESTA(전자여행허가) 소지자 역시 동일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 


B-1 비자는 사업·투자·계약 협상 등을 목적으로 발급되는 일명 ‘출장 비자’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해당 비자는 미국 내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여기서 노동력이란 신체를 이용한 생산 활동을 의미한다. 이번에 미국측에서 허용 확인한 설치·점검·보수 모두 기존 기준으로는 불법이다.

 

▲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의를 완전 신뢰하긴 어렵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국토안보수사국(HSI)에 발각된 HL-GA 불법체류 근로자들. [사진=연합뉴스]

 

미국 내에서 고용 관계를 맺거나 임금을 받는 행위 또한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ESTA 역시 동일하다. 관광·출장 목적의 입국만 허용될 뿐, 근로는 철저히 제한된다. 이번 조치는 그간의 원칙을 깨고 노동력 제공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B-1 또는 ESTA 관련 규정을 위반할 경우 근로자의 비자는 즉시 취소되며, 향후 10년간 미국 입국이 금지될 수 있다. 기업이나 고용주가 이를 위반할 경우에도 벌금과 함께 비자 스폰서 자격이 박탈된다. 스폰서십 H-1B 등 합법적 취업 비자를 지닌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제도다. 근로자는 스폰서 제도를 통해 특정 기간을 해당 기업에서 일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을 얻는다. 기업이 스폰서 자격을 잃으면 외국인 근로자의 영주권 기회가 사라져 인재 유치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번 합의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예외적 제도다. 현대차 구금 사태로 전문 기술 인력 부족현상에 여론이 악화되자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문을 연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이다. 기술자 인력의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원칙이 복원될 수 있고 그때는 근로자들이 입국 제한과 같은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기업 또한 스폰서 자격 상실이라는 리스크가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비자 정책에서 말을 번복한 전례도 적지 않다. 1기 집권 시절 H-4 (H-1B 근로자의 배우자 비자) 취업 허가 폐지를 예고했으나 최종 시행에 이르지 못했다. 또 최근에는 과학기술 분야 유학생 비자 연장 금지 조치를 검토했지만, 불확실성만 남긴 채 법제화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비자 관련 정책을 여러번 바꾼 전적이 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사진=EPA/연합뉴스]

 

업계 역시 이번 합의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유학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유독 비자 정책에서 번복 사례가 많았다”며 “기술자의 필요성이 사라질 경우 이번 합의를 일방적으로 무력화 시키게 된다면, 당시 근무한 인력들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또한 미국과 문서화 된 확실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당장 인력을 미국 생산기지에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현대차 구금 사태처럼 돌발 변수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 성향상 원하는 성과를 얻은 뒤 어떤 태도로 나올지 예측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이러한 불확실성까지 고려해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도 불안 요인을 의식한 듯 근본적 제도 개선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추가 투자로 이어지려면 이번 개선 조치를 넘어 근본적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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