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양재동에 자리 잡은 양재시민의숲은 대규모 관광지나 이벤트 공간이 아닌 직장인과 주민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든 휴식 장소로 불리며 독특한 상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인근 오피스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의 산책로가 되고, 퇴근 이후에는 러닝과 걷기, 조용한 사색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인근에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그룹 연구소 등 대기업 연구·개발(R&D) 시설이 밀집해 있어 안정적인 소득을 기반으로 한 직장인 수요도 상권을 지탱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인접한 강남·양재역 상권의 빠른 소비 리듬과는 확연히 다른 이곳의 분위기는 ‘붐비지 않는 도심 속 자연’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프랜차이즈보다 취향”…조용한 소비가 만든 양재시민의숲 상권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살펴보면 ‘양재시민의숲’을 중심으로 맛집, 카페, 꽃집 등 일상적인 소비를 나타내는 키워드들이 자연과 산책 이미지와 함께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울창한 나무와 산책로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우고 있다. 일대가 단순한 공원 공간을 넘어 일상 속 휴식과 소비가 공존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재시민의숲과 관련된 해시태그들을 살펴보면 ‘#양재시민의숲’ 10만6000개, ‘#양재시민의숲맛집’ 2만7000개, ‘#양재시민의숲카페’ 5000개, ‘#양재시민의숲데이트’ 1000개의 게시물이 등록돼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게시글의 모습을 보면 북적이는 상업지구와 달리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양재천을 따라 형성된 양재카페거리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카페가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매장으로 각기 다른 콘셉트와 개성 있는 인테리어와 메뉴를 앞세워 방문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돼 있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찾아 즐기기에도 적합한 공간들이 가득하다.
카페거리 내 한 카페는 커피로 블루리본을 받은 곳이다. 이 매장에 들어서면 ‘커피를 즐기는 시간과 함께 방문한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매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대부분이 핸드폰을 하기보다 함께 온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드립커피 한 잔에 1만원에 판매하는 등 이곳에서 판매하고 있는 평균 음료 가격대는 일반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비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곳에 방문한 허지원 씨(33·여)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과 함께한 사람과의 시간을 위해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며 “무제한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어 실제로 와이파이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따뜻한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다음에 또 한 번 더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지현 씨(33·남)는 “봄에만 찾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겨울에 와봤는데,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며 “다른 지역에 비해 음료 가격이 다소 높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안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SNS를 통해 방문하는 외부인들에게는 혼선도 있다. ‘#양재시민의숲카페’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게시물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도곡역 인근 카페를 포함하고 있어, 방문 전 위치 확인이 필수다. 이처럼 ‘조용한 상권’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며 주변 지역까지 함께 묶여 소비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점심엔 산책, 밤엔 러닝…도심 직장인의 ‘생활형 공원’으로 진화
양재시민의숲의 진정한 경쟁력은 공원 내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곳은 주말형 공원이 아니라, 평일에도 활발히 이용되는 ‘생활형 공원’이다. 특히 점심시간 풍경은 이 지역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근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공원으로 들어와 짧은 산책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일부는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조깅으로 식곤증을 해소하고, 다시 사무실로 향한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도 활용 가능한 공원이라는 점은 직장인들에게 큰 장점이다. 도심에서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연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재시민의숲은 ‘업무 효율을 높이는 공간’으로까지 인식된다. 실제로 인근 기업 관계자들은 “점심 산책 이후 오후 집중도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퇴근 이후에는 공원의 성격이 다시 바뀐다. 러닝화 차림의 직장인, 가족과 함께 산책 나온 주민, 혼자 걷는 중·장년층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양재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평탄하고 시야가 트여 있어 초보자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대규모 러닝크루 문화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주민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한 주민은 “각자 속도대로 운동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공원 내부에는 배드민턴장, 테니스장, 야외 운동기구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특정 연령대나 목적에 치우치지 않고, 생활체육 전반을 아우르는 구조다. 중·장년층이 배드민턴을 즐기는 옆에서 젊은 직장인이 러닝을 하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산책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현재 양재시민의숲 인근을 흐르는 양재천에서는 수변 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산책로와 휴식 공간을 중심으로 한 정비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주민들은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에는 지금보다 이용하는데 더욱 쾌적하고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민 박재상 씨(59·남)는 “공원 안에 배드민턴, 테니스, 러닝, 산책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직장인부터 인근 거주민까지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며 “특히 봄철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만큼 정비가 마무리되면 내년 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재시민의숲 사례가 서울 도심 녹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대규모 개발이나 상업시설 유치가 아니라 자연과 일상 소비, 운동이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공간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양재시민의숲은 ‘더 크게’가 아니라 ‘더 오래’ 이용되는 공간”이라며 “도심 공원이 어떤 방식으로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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