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두고 미국 정·재계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등장한 가운데 이를 주도하는 막후 세력의 정체가 새삼 화제다. 이른바 ‘쿠팡 호위무사’를 자처한 그들의 정체는 미국 정치권과도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는 월가의 거물급 인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 정계와의 끈끈한 커넥션을 활용한 이들의 대응 방식이 한국 소비자로부터 돈을 벌고도 미국 정부를 앞세워 사회적 책임은 회피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앞세워 쿠팡 호위하는 ‘월가·워싱턴의 빅마우스’ 닐 메타·브래드 거스너
22일 미국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현지 벤처캐피털(VC)인 그린옥스(Greenoaks)와 알티미터(Altimeter)가 한국 정부의 쿠팡 제재가 부당하다며 국제 중재를 신청하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조사를 요청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발생한 쿠팡의 데이터 유출 사고를 구실로 한국 토종 기업이나 중국 경쟁사와 달리 쿠팡에만 가혹한 ‘이중 잣대’를 적용해 일반적인 규제 집행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쿠팡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국 우선주의’ 명분도 모자라 민감한 외교문제까지 구실로 삼은 것이다.
그린옥스는 쿠팡 설립 초기인 2010년부터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인 닐 메타(Neil Mehta)가 창업한 기업이다. 현재 약 14억달러(원화 약 2조원) 규모의 쿠팡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닐 메타는 세계적인 헤지펀드인 디.이.쇼(D.E.Show) 출신으로 사모펀드 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헨리 크레비스(Henry Kravis)의 핵심 파트너다. 헨리 크레비스는 그린옥스 설립 초기 약 5000만달러(원화 약 730억원) 규모의 첫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해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당시 헨리 크레비스는 닐 메타를 두고 “매우 규율 있고 탁월한 감각으로 여러 번 시장의 흐름에 맞서는 진짜 실력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 사모펀드 KKR의 창업주인 헨리 크레비스는 공화당 후원자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협력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회에 100만달러(원화 약 15억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재무장관 후보로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백악관 만찬에 직접 초대해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해 자문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또 다른 미국 투자회사 알티미터 캐피털(이하 알티미터)의 창업주 브래드 거스너(brad gerstner) 역시 미국 현지에서 친(親) 트럼프 인사로 익히 유명하다. 브래드 거스너는 지난 2020년 소프트웨어 역사상 최대 IPO로 기록된 스노우플레이크의 초기 투자자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포보스 ‘미다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중이다. 또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핵심 공약인 ‘트럼프 계좌(Trump Account)’ 정책을 직접 설계한 인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계좌는 2025~2028년생 미국 신생아에게 정부가 초기 자금 1000달러를 적립해 주는 장기 투자 계좌로 경제적 불평등 완화와 아동의 금융 자립을 목표로 하는 역점 사업이다.
브래드 거스너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가 설립한 비영리 단체 ‘인베스트 아메리카(Invest America)’를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트럼프 계좌 사업도 이 단체를 통해 전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의 주요 회원은 공화당의 의원들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리사 수 AMD CEO 등 실리콘밸리 및 월가의 유력 기업가들이다. 공화당 핵심 전략가로 명성이 자자한 전 공화당 상원 선거위원 부위원장 맷 리라(Matt Lira)가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다. 맷 리라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대통령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가 이끈 ‘미국 혁신 사무국(OAI)’에서 대통령 혁신 정책 담당 특별 보좌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브래드 거스너 역시 활동 보폭을 빠르게 늘려나가고 있다.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그는 트럼프의 핵심 경제 공약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회의에 직접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설계를 조언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마이클 델 델 CEO,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정·재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한국 정부의 쿠팡 규제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한 투자자들의 정체와 그들의 최근 행보가 제2, 제3의 쿠팡을 낳는 ‘나쁜 선례’로 남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쿠팡의 투자자, 엄밀히 따지면 ‘특수관계자’에 가까운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트럼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은 한국 정부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자본이 정치적 관계를 지렛대 삼아 국가의 정책 주권을 흔드는 유례없는 상황에 대비해 나쁜 선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정교한 국제법적 대응과 외교적 협상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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