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영 IBK자산운용 대표가 차기 IBK기업은행장으로 임명되면서 국책은행 수장 공백은 일단락됐지만 노조가 본점 출입문을 봉쇄하며 장 행장의 첫 출근이 무산됐다. 조직 안정과 노사 통합이 임기 초반 최대 과제로 부상했다. 정책금융 확대라는 정부 기조를 현장에서 집행해야 하는 기업은행 특성상 노조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지 못하면 생산적 금융 실행력과 대외 신뢰도에 동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전일 장 대표를 IBK기업은행장으로 임명 제청했고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 장 행장이 취임했다. 김성태 전 행장이 2일 임기를 마친 뒤 기업은행은 김형일 전무이사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돼 왔다. 연초 조직개편과 정기 인사, 사업계획 집행이 맞물린 시점에서 수장 공백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자 내부적으로도 불확실성이 누적돼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행장은 1989년 기업은행에 입행한 내부 출신이다. 경영관리·자금운용·경제연구·리스크관리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 경영관리부 IR팀장, 여의도한국증권지점장, 자금운용부장, IBK경제연구소장, 강북지역본부장, 리스크관리그룹장(부행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한 뒤 2023년 IBK자산운용으로 옮겨 부사장을 거쳐 대표이사를 맡았다.
금융위원회는 장 행장 인선 배경으로 기업은행 업무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리스크 관리 전문성을 강조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 지원 강화와 첨단전략산업 분야 벤처기업 투·융자 확대 등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이끌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장 행장은 전임 김성태 행장에 이어 2연속 내부 출신 행장이자, 역대 6번째 내부 출신 행장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취임 첫날부터 장 행장이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23일 오전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출입구를 막고 출근 저지 시위를 벌였다. 장 행장은 본점 출근을 시도했으나 노조원들과 대치 끝에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발길을 돌렸다. 그는 본점 인근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해 업무 파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사에서 인사·전략·리스크 의사결정의 상징인 최고경영자의 출근이 막힌 상황은 단순한 노사 분쟁을 넘어 경영 정상화의 출발선이 흔들렸다는 신호로 비칠 수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핵심 쟁점은 총액인건비제에 따른 임금·수당 문제다. 노조는 정부의 총액인건비제 적용으로 인해 직원 1인당 600만원 수준의 ‘체불임금’이 누적돼 있다고 주장했다. 급여 인상률 제한 등으로 연간 인건비 총액이 정해져 있어 시간외근무수당이나 휴가 중 미사용 일수 등을 고려한 지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노조는 납득할 만한 해결책이 제시될 때까지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과거 윤종원 전 행장 때에도 노조의 출근 저지가 이어졌고 당시 첫 출근이 취임 27일째에야 이뤄진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 행장은 현장에서 갈등 해소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 지시 사항이 있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은행 임직원들의 요구와 노조의 문제 제기 취지를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사가 합심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도 냈다.
다만 노조가 ‘대통령 지시의 실질적 이행’과 ‘구체적 대안’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원론적 약속만으로 교착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된다. 총액인건비제는 국책·공공기관 전반에 적용되는 구조적 규율과 맞물려 있어 기업은행 단독의 결단만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 행장이 노조를 설득하는 동시에 금융위·기재부·대통령실 등 관계 당국과의 협의 구도를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 내느냐가 초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 행장의 ‘대관 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시장 논리만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정부 정책 기조와 제도 환경에 따라 사업 방향과 재무 운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조 갈등 역시 임금체계의 세부 이슈를 넘어 정부 통제 구조와 연결돼 있는 만큼 사측과 노조 사이의 중재만으로는 해법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조직 안정이 시급한 이유는 정책금융 집행 일정이 이미 추진되고 있어서다. 기업은행은 ‘IBK형 생산적금융 30-300 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까지 5년간 생산적 금융을 300조원 이상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금융 확대가 리스크 관리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기업은행은 전체 대출의 상당 부분을 중소기업에 공급하는 구조인 만큼 경기 변동의 충격이 연체율과 건전성 지표에 더 민감하게 반영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3분기 기준 기업은행 연체율은 1%로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책은행은 방향보다 실행이 중요하지만 실행은 결국 조직 안정에서 시작한다”며 “출근조차 막힌 상황에서 내부 결속과 대외 협상력을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만큼 신임 행장에게는 초반부터 풀어야 할 숙제가 쌓여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이어 “장 행장이 내부 출신 강점을 살리되 이번에는 외부를 움직이는 리더십을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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