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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기아는 어떻게 9회말 2아웃 이후 역전에 성공했을까?
[영상] 기아는 어떻게 9회말 2아웃 이후 역전에 성공했을까?
[사진=기아]

 

[오프닝]

여러분, 여러분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도전이 뭐였나요? 아마 누구에게나 “아, 그땐 진짜 쉽지 않았지” 싶은 순간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근데 얼마 전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청년들과 함께한 공식 간담회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요. “경영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도전이 뭐였나요?” 근데 이 질문에 정의선 회장이 답변으로 뭘 꼽았는지 아세요? 바로 ‘기아 자동차 살리기’였습니다.


[뼈아픈 과거에서 글로벌 최정상 브랜드로]

사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 기아가 부도 위기까지 몰렸었고 이후에 현대자동차에 인수가 됐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막 기아한테 현대차의 서자, 회생불가한 식물기업,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아를 보면 그때의 평가가 얼마나 성급했는지 알 수 있죠. 현재 기아는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중의 하나인 ‘세계 올해의 차’를 2년 연속 수상하면서 이제는 아예 차원이 다른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죠. 한때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기업이 어떻게 세계 정상급 브랜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기아를 되살린 힘은 무엇이었는지 지금부터 정의선 회장이 보여준 이 놀라운 마법을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빨간 넥타이, 그리고 디자인 경영]

2005년, 35살이었던 정의선 회장이 기아 사장으로 취임을 하는데요. 근데 당시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머릿속에 기아는 이미 ‘망한 기업’, ‘안 팔리는 차’ 이런 이미지가 박혀있었거든요. 그런데 정의선 회장은 여기서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선포합니다. 왜 사실 자동차는 “멋있다”, “한번 타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어야 좀 팔리는 거잖아요. 근데 기아차에 부족한 게 바로 이런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기 위해 유럽으로 직접 날아가는데요. 그리고 또 몇 번이나 연락을 해가지고 이 뜻을 전했다고 하죠. 그야말로 삼고초려였습니다.


또 이 시기에 나오는 대표적인 일화 가운데 하나가 ‘빨간 넥타이’인데요. 무슨 얘기냐면 정의선 회장이 국내든 해외든 공식 석상에 설 때마다 항상 이 빨간 넥타이를 했다는 겁니다. 당시에 기아 로고가 빨간색이었잖아요. 기아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그런 식으로도 보여준 거죠. 그리고 회사 임직원들한테도 “기아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다. 잘만 다듬으면 세계 최고의 보석이 된다” 이러면서 끊임없이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움직임들이 하나 둘 쌓이면서요. 기아의 본격적인 반전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시장의 판도를 뒤집은 반란 : K5와 카니발의 대성공]

근데 정의선 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시장판을 진짜로 뒤집는데요.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K5 신드롬입니다. 원래 당시 그 중형 세단 시장은 소나타가 거의 독주하다시피 했잖아요. 기아차는 뭐 따라가는 2인자 정도고. 근데 2010년 1세대 K5가 등장하면서 시장판이 완전히 바뀝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다시피 일단 이 디자인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당시 그 국산 중형차에선 보기 드물었던 진짜 막 수입 스포츠카에서나 볼법한 그 날렵한 디자인. “기아가 이런 차를 만든다고?” 하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2010년 6월 K5는 무려 1만 673대가 팔리면서 9천여 대 판매에 그쳤던 소나타를 제치는데요. 출시 두 달 만에 국민차 소나타를 끌어내린 거예요. 그리고 당시 2030 젊은 세대 사이에서 흰색 K5에 파노라마 선루프, 이른바 ‘흰파 조합’이라고 하죠. 첫 차의 로망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이때 당시 차를 받으려면 반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럴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죠. 결국 K5는 ‘기아차는 현대차의 동생’ 이 인식을 정면으로 깨버린 결정적인 한방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K5가 시장을 한번 뒤집어 엎어놓고 또 그 바통을 이어받은 차가 있죠. 바로 아빠 차의 대명사, 카니발입니다. 특히 이 실내를 리무진처럼 꾸며놓은 카니발 하이 리무진은 진짜 인기가 대단했죠. 당시 “VIP의 의전문화를 바꿨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까. 예전에는 막 톱스타들, 연예인들이 그 스타크래프트 밴을 탔잖아요. 수입차, 쉐보레 거. 근데 이제는 연예인들 10명 중 9명이 이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탄다고 할 정도로 완전 분위기가 바뀝니다.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냐면요. 사실 차가 넓고 고급스러운 것도 맞는데 한국에서만 통하는 아주 강력한 장점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고속도로 버스 전용 차로’를 달릴 수 있다는 겁니다. 기아가 한국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한국 도로에서 어떤 차가 진짜 유리한지, 이거를 정확히 꿰뚫어 본 거죠. 게다가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이전처럼 이 검은 세단은 너무 권위적으로 보인다, 이제 약간 카니발 이런 걸 타야 진짜 ‘발로 뛰는 정치인’ 같다, 이런 말이 돌면서요. 연예인들도 정치인들도 타니까 기아 자동차의 브랜드 가치도 확 올라가게 됩니다.


[중고차가 신차를 이긴 ‘정의선의 차’ 모하비 이야기]

자 이렇게 기아에는 K시리즈나 카니발처럼 이런 베스트셀러들도 있지만요. 이 자동차 마니아들의 마음을 훔친 그 숨겨진 강자들이 또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정의선의 차’라고도 불리는 모하비죠. 모하비는 2008년에 나온 대형 SUV인데 정의선 회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챙겼다는 정통 프레임바디 SUV로도 유명하죠. 그리고 출시 이후에는 ‘아무리 험하게 몰아도 고장나지 않는 상남자의 차’ 이런 입소문이 퍼지면서 마니아층이 생겨납니다. 또 여기에 전설적인 일화도 하나 있는데요. 자동차는 공장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감가가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근데 이 모하비는 단종 소문이 돌 때마다 1, 2년 지난 중고차가 신차만큼, 심지어는 이 신차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가격 역전’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니면 이 명차를 영영 못 산다” 이거였죠. 그 정도로 모하비는 마니아층 사이에서 거의 전설처럼 통하는 차였습니다.


[기적을 완성한 4개의 기둥과 결정적 숫자들]

자,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게 있죠. 이 기아의 성공, 숫자로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요. 이 앞의 다양한 시도들이 기아의 수익성을 완전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습니다. 2023년 기아는 당시 창사 이래 최대였던 영업이익률 11.6%, 영업이익 11조 6천억 원을 기록하거든요. 이 정도면 웬만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 그런 데랑 비교해도 진짜 밀리지 않는 그런 숫자예요. 또 기아는 미국 최고 권위의 JD파워 ‘내구품질조사’에서 도요타 이런 경쟁사들을 다 제치고 3년 연속 일반 브랜드 1위를 차지하기도 하죠. 그 뒤에는 로고(사명)도 31년 만에 바꾸고 이런 리브랜딩에 성공하면서 2021년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기아의 브랜드 가치는 무려 약 7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9조 원 정도? 그리고 또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힘도 있었는데 이 부도 위기에서 회사를 일으켜 세운 그 과정을 함께한 직원들, 그 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가 약 16년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기아에는 ‘내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이런 좀 끈끈한 조직 문화가 있었고 바로 이런 게 그 모든 성장의 바탕이 됐던 거죠.


[클로징-혁신의 씨앗은 위기다]

그러니까 이 기아의 부활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우선은 정의선 회장의 강한 철학, 그리고 불량률을 제로로 수렴시킨 품질력, 여기에 로고까지 과감히 바꿀 정도의 브랜드 혁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변화를 현장에서 묵묵히 버텨내준 임직원들의 애정. 그 모든 것들이 용광로처럼 끌어올라 만들어낸 대한민국 산업계의 반전드라마였습니다. 파산 직전, 그야말로 9회말 2아웃과 다름없던 상황에서 글로벌 정상으로 우뚝 선 기아의 이야기, 이 이야기가 지금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게 작은 용기가 될 수 있길 바라면서요. 오늘 4인용 책상,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기사 속 Q&A
Q1. 정의선 회장이 가장 힘들었던 도전으로 꼽은 일은 무엇인가요?
A. 정의선 회장이 가장 힘들었던 도전으로 꼽은 일은 ‘기아자동차 살리기’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아는 부도 위기와 부정적 시장 인식을 겪었지만, 정의선 회장은 기아를 회생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로 다시 세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Q2. 기아는 어떻게 부도 위기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부활했나요?
A. 기아의 부활은 디자인 혁신, 브랜드 재정비, 품질 경쟁력 강화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정의선 회장은 디자인 중심 전략을 내세우고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으며, 이후 K5·카니발·모하비 같은 상징적 모델을 통해 기아의 브랜드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꿨습니다.
Q3. 기아 부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과는 무엇인가요?
A. 기아 부활의 대표적 성과는 K5 흥행, 높은 수익성, 그리고 브랜드 가치 상승입니다. K5는 2010년 6월 1만 673대가 판매됐고, 2023년 기아는 영업이익률 11.6%와 영업이익 11조 6천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2021년 인터브랜드 기준 브랜드 가치는 약 70억 달러로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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