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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금융’ 외쳤지만 현실은 삭막…저신용층 외면하는 정책금융 민낯
‘포용금융’ 외쳤지만 현실은 삭막…저신용층 외면하는 정책금융 민낯

고금리·고물가 장기화 속에서 서민·취약계층의 금융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현행 포용적 금융 정책은 여전히 ‘자금 공급 확대’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서민금융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취약한 저신용층에 대한 지원 비중은 줄어들고 있고, 채무조정 제도 역시 실질적인 경제 재기 지원보다는 단기적인 부실 관리 기능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융 취약계층이 연체 이후 다시 제도권 금융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사후 관리 체계와 성과 평가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포용금융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단순한 대출 공급을 넘어 금융·복지·고용을 연계한 회복 중심의 포용금융 체계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은 늘었지만 저신용층은 줄었다…정책서민금융 취지 ‘흔들’

 

정부의 정책서민금융 공급 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증가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정책서민금융 공급 규모는 11조474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3% 증가했다. 이 가운데 서민금융진흥원이 공급한 규모는 7조1573억원으로 전체의 62.4%를 차지했다.

 

정부는 햇살론과 미소금융,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등 다양한 정책 상품을 통해 저신용·저소득층의 금융 접근성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공급 확대와 별개로 실제 지원 구조는 저신용자는 소외된 채 중신용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정책서민금융 신용평점 구간별 보증·융자 현황.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서민금융진흥원의 신용평점 하위 10% 이하 저신용자 대상 융자·보증 비중은 2023년 66.1%에서 2025년 49.1%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상환 가능성이 높은 신용평점 하위 20% 초과 차주의 비중은 같은 기간 23.3%에서 40.1%로 빠르게 증가했다. 사실상 정책금융이 연체 위험과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차주 중심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책서민금융이 도입된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책서민금융의 본래 목적은 민간 금융시장에서 배제된 취약계층을 제도권 금융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부실 관리가 강화될수록 오히려 가장 절실한 계층이 지원 대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책서민금융 재원 구조 역시 불안 요소로 꼽힌다. 현재 정책서민금융 재원의 상당 부분은 금융회사 출연금에 의존하고 있는데 해당 법적 근거가 오는 10월 종료되는 한시 규정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회사 출연 의무 규정의 효력이 종료될 경우 정책서민금융 공급 규모가 기존의 절반 수준까지 감소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2025년 기준 서민금융보완계정 수입 가운데 금융회사 출연금은 4396억원으로 정부 출연금(3939억원)보다 많았다. 현재 구조상 금융권 부담이 줄어들 경우 정책서민금융 공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공급 확대보다 지속 가능한 재원 구조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경기 상황에 따라 공급규모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상설 기금 체계와 함께 정부 재정·금융권 공동 부담 구조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성과 평가 체계 역시 개선 과제로 꼽힌다. 현재 정부는 정책서민금융 성과를 공급 건수와 금액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실제 수혜자의 신용 회복 수준이나 재연체 여부를 추적하는 시스템은 부족한 상황이다. 단순 공급 실적보다 신용점수 회복과 재취업, 재연체 감소 등 실질적인 자립 성과를 중심으로 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반복되는 연체 악순환…“채무조정도 재기 지원 중심으로 바뀌어야”

 

▲ 정책서민금융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단순히 빚을 줄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교육과 취업 지원, 복지 서비스 등을 함께 연계해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경제 활동 복귀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채무조정 제도 역시 실효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고금리 장기화로 금융채무불이행자 수와 연체율이 증가하는 가운데 채무조정 실효율 역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실효자 수는 2018년 2만1000명에서 2025년 2만9000명으로 증가했다. 사전채무조정 실효자 역시 같은 기간 6000명에서 1만5000명으로 늘었다.

 

채무조정을 받은 이후에도 상당수 채무자가 다시 연체 상태에 빠지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채무조정 제도가 원금 감면과 상환 기간 연장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채무자의 실질적인 재기 가능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행 채무감면 체계가 채무원금과 가용소득 중심의 획일적인 계산 방식으로 운영되다보니 정작 채무자가 재기하기까지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무자의 연령과 직업, 부양가족 수, 주거 상황 같은 현실적인 생활 조건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무자의 상황에 맞춰 보다 정교한 맞춤형 채무감면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금융채무와 별도로 관리되는 건강보험료와 전기·수도·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체납 문제도 개선 과제로 지목된다. 취약계층 입장에서는 공과금 체납이 생계 자체를 위협할 수 있지만 현재는 금융채무와 연계된 통합 지원 체계가 미흡한 상황이다. 취약계층 채무조정 신청 시 공공요금 감면 제도를 함께 연계하는 통합 지원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회사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 역시 과제로 지목된다.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 이후 금융회사에 직접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 채무조정 요청률은 5.9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업권 요청률은 0.72%에 그쳤다.

 

한시적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실효성 문제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대표적인 채무조정 제도인 새출발기금은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채권매입액이 13조3939억원으로 계획 대비 40.1% 수준에 머물렀고 신청자 대비 약정 체결 비율 역시 65.5% 수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정부 주도의 일회성 채무 탕감보다 금융회사들이 연체 초기 단계부터 선제적으로 채무조정에 나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빚을 줄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교육과 취업 지원, 복지 서비스 등을 함께 연계해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경제 활동 복귀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포용적 금융의 핵심은 금융 취약계층이 다시 경제 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개인이 경제 시스템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채무 감면 자체보다 연체 이후 다시 경제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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