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축구 약소국, 강팀 잡는 ‘집념 축구’ 종주국이 되다]
여러분, 세계적인 축구 강팀들이 한국 축구를 상대할 때 가장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게 뭔지 아세요? 뭐 기술? 스타 선수? 다 아니고 바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념’이라고 합니다. 휘슬 울리자마자 눈빛 싹 바뀌어가지고는 경기 끝나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죠. ‘중꺾마’라고도 하죠. 지금의 대한민국 축구는 그렇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자, 오늘은 월드컵 특집 2탄입니다. 한때 아시아의 변방으로만 여겨졌던 한국 축구는 언제부터 강팀들도 긴장하는 팀,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발목을 탁 잡아버리는 그런 팀이 된 걸까요?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에도 축구장이 아니라 조선소, 현대중공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 사람이 있죠. 1993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었던 정몽준 전 회장과 고 정주영 창업주. 오늘은 허허벌판에서 배를 만들던 그 도전정신이 한국 축구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비즈니스와 스포츠가 만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이봐, 해봤어?” 한국 축구에 심어진 왕회장의 ‘불도저 DNA’]
한국 축구의 ‘집념 DNA’를 이해하려면 먼저 현대중공업의 탄생 이야기부터 봐야 합니다. 원래 조선소가 돈이 되게 많이 들어가는 큰 사업이잖아요. 197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조선소를 지을 돈을 빌리기 위해 영국으로 향합니다. 당시 한국 상황이 어땠냐면요. 조선소가 없던 건 당연하고 제대로 된 대형 선박조차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나라였어요. 솔직히 누가 빌려줘요 그럼. 망할 수도 있는데. 근데 이때 정주영 창업주가 지갑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책상 위에 딱 올려놓습니다. 여러분 여기 뭐가 그려져 있나요? 거북선 그림이 있잖아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든 민족이오. 우리나라 기술력과 잠재력이 이 정도입니다. 산업화가 좀 늦어서 그렇지.” 이렇게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덕분에 울산 미포만의 허허벌판에 조선소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출발한 현대중공업은 오늘날 한국을 세계적인 조선 강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주변에서 모두 안 된다고 할 때 “이봐, 해봤어?”라고 밀어붙이는 그 불도저 정신. 바로 이 정신이 훗날 K-축구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주영 창업주의 아들이자 현대중공업을 이끌었던 정몽준 전 회장이 199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면서 그 도전정신이 한국 축구에도 들어오게 된 겁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2002년 한일월드컵 있잖아요. 이게 사실은 처음부터 한일 공동 개최였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일본 단독 유치가 거의 99% 확정된 행사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자금도 셌고 축구계 네트워크도 워낙 강하다 보니까 다들 “아시아에서 월드컵? 그럼 뭐 일본이겠지” 이런 반응이었던 거죠. 그런데 이때 정몽준 전 회장이 나섭니다. 일본이 아시아 축구계를 꽉 잡고 있으니까 우리는 역으로 유럽이랑 아프리카로 FIFA 집행위원들을 직접 찾아간 거예요. 우리 한국도 할 수 있다고, 우리도 월드컵 열 수 있다고. 이때 당시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이라고 세계 축구의 실세 같은 인물이 있었는데, 이분이 좀 노골적으로 일본 단독 유치를 밀었단 말이죠. 근데 우리도 지지 않았습니다. 정몽준 전 회장이 유럽축구연맹 회장을 설득해 연합하면서 아벨란제 회장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치열한 접전 끝에 결국 FIFA는 처음으로 공동 월드컵 개최를 결정합니다. 그게 바로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던 거죠. 모두가 안 될 거다, 불가능이다 말했던 판을 특유의 집념과 승부사 기질로 완전히 뒤집어버린 겁니다.
[파주 NFC와 히딩크라는 R&D 투자]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죠. 정몽준 전 회장은 여기서부터 한국 축구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합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싹 다 바꾼 거예요. 우선 하드웨어는 어떻게 바꿨냐면요. 지금이야 국가대표팀 전용 훈련장이 당연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2001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가대표팀은 제대로 된 전용 훈련장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운동장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훈련하는 이른바 ‘메뚜기 훈련’을 했던 거죠. 정몽준 전 회장은 이 문제를 기업가의 눈으로 봤습니다.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들려면 세계 최고의 도크가 필요하듯 세계적인 팀이 되려면 최고의 훈련장이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 파주 NFC입니다. 축구 대표팀이 한 곳에서 먹고 자고 훈련도 하고 개인 분석까지 할 수 있는 한국 축구의 본격적인 베이스캠프가 생긴 거죠. 여기에 월드컵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 축구 전용 경기장들이 생기면서 한국 축구의 인프라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단계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럼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바꿨냐면요. 너무 유명한 이름이죠.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데려옵니다. 그냥 데려만 온 게 아니라 “이제 당신이 알아서 다 하시면 됩니다”라며 철저하게 권한을 위임합니다. 옆에서 간섭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사실 초창기 시작은 좋지 않았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왔을 때 우리나라가 프랑스와 체코를 상대로 경기를 했는데 둘 다 0대5로 크게 져버린 거예요. 축구 팬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5대0이 뭐냐, 내년에 월드컵인데 감독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치만 정몽준 전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기업에서도 신제품을 만들 때 수많은 테스트와 실패를 거치잖아요. 강팀에게 한번 얻어맞아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 거죠. 덕분에 히딩크 감독은 자기 방식대로 팀을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였습니다.
[아시아의 맹주, K리그의 르네상스를 열다]
정몽준 전 회장은 16년 동안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었는데요. 이 기간 동안 한국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K리그는 아시아 무대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박지성·이영표 같은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해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직접 증명했죠. 옛날에는 한국이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기도 벅찼는데 지금은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진출하면서 무려 11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까지 가지게 됐습니다. 이건 단순히 선수 몇 명이 잘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허허벌판에서 세계적인 조선기업을 일궜던 그 시스템과 자본, 그리고 세계를 상대로 영업하는 감각이 한국 축구 행정에 들어왔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한국 축구는 이제 세계적인 강팀들도 쉽게 볼 수 없는 아시아의 대표 강호로 올라서게 됐습니다.
[당신의 가슴 속엔 ‘500원짜리 거북선’ 같은 열정이 있나요?]
이번 월드컵을 보실 때 우리 한국 선수들이 강팀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부딪히는 모습을 보신다면 그 뒤에 있는 한국 축구의 집념 DNA를 꼭 떠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아무것도 없던 울산 바닷가에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조선소의 문을 열었던 패기, 그리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월드컵 유치를 기어코 얻어낸 뚝심.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수많은 어려움과 넘어야 할 벽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준비하고, 버티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 보면 못할 게 없습니다. 2026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가 다시 한번 그 집념을 보여주길 기대하면서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빛나는 거북선을 띄워 올리시길 응원합니다. 자, 오늘 르데스크 4인용 책상에서 준비한 내용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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