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스닥(코스닥 1000선)’이 붕괴됐지만 금융투자안팎에선 오히려 코스닥 상승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하락을 단순한 악재가 아닌 시장 체질 개선의 계기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닥 상장사의 불공정 거래 의혹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금융당국이 코스닥 활성화 대책 마련에 착수하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코스닥 시장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코스닥 상장사 인탑스의 교환사채(EB) 발행과 관련한 ‘주가 누르기’ 의혹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관련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이런 것이 주가 조작 아닌가요?”라는 글을 게시했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 코스닥 상장사의 불공정 거래 의혹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발언이 단순한 개별 기업 비판을 넘어 코스닥 시장 전반에 대한 개혁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부터 강조해온 주가조작, 공매도 교란 행위, 불법 승계 등 시장 내 불공정 관행 근절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평가다.
특히 시장에서는 이 대통령이 코스피가 아닌 코스닥 상장사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코스피가 반도체 중심의 강세장을 연출한 반면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기존 대형주 중심의 밸류업 정책을 넘어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한 추가 지원책과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최근 코스닥 시장 부양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일 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증권사 관계자들을 소집해 코스닥 시장 현황을 점검하고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업계에서는 코스피와 코스닥 간 양극화가 정책 논의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대통령 취임일인 지난해 6월 4일 2770.84였던 코스피는 지난 4일 8639.41까지 상승하며 1년 새 200% 넘게 급등했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닥은 750.21에서 1049.73으로 약 40% 상승하는 데 그쳤다. 최근에는 다시 1000선 아래로 밀려나며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태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정책 수혜가 상대적으로 대형주에 집중되면서 성장주와 중소형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이 소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성장펀드’는 코스닥 시장의 새로운 수급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는 인공지능(AI) 분야에 30조원, 반도체에 20조9000억원, 바이오·백신에 11조6000억원을 각각 배정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이차전지에 7조9000억원, 미디어·콘텐츠 분야에 5조1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된다. 대부분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업종과 겹치는 분야인 만큼 향후 정책 자금이 본격적으로 집행될 경우 시장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민성장펀드의 자금 배분 방향은 코스닥 시장을 구성하는 AI,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핵심 성장 산업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며 “정부가 기술특례 상장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기반을 확대하려는 점도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동안 자금 조달 부담으로 저평가를 받아왔던 기술기업들의 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자산운용업계 역시 코스닥 시장을 겨냥한 투자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2일 ‘TIGER 코스닥액티브 ETF’를 신규 상장했다. 해당 상품은 코스닥 지수를 비교지수로 활용하면서 반도체와 AI, 바이오 등 성장 산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다. 현재 편입 상위 종목에는 ISC와 엠케이전자, 샘씨엔에스 등 반도체 패키징 및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글로벌 AI 투자 확대와 정부의 신성장 산업 육성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상품을 출시했다”며 “최근 코스닥 시장은 AI와 반도체뿐 아니라 바이오, 로봇, 우주항공 등 미래 산업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책 자금 공급과 대형 IPO 활성화가 맞물릴 경우 코스닥의 성장 잠재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코스닥 하락이 단기적으로는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 지원 확대를 이끌어낼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불공정 거래 근절과 자금 공급 확대를 동시에 추진할 경우 코스닥 시장의 구조적 문제였던 신뢰 부족과 수급 불안정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코스닥 시장은 성장 잠재력에 비해 수급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다”며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정책 자금이 본격적으로 집행되고 시장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병행된다면 체질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코스닥 1000선 붕괴는 시장에는 악재였지만 정책 측면에서는 오히려 강력한 개혁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자금 공급 정책과 시장 신뢰 회복 노력이 시너지를 낸다면 코스닥은 향후 국내 증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 코스닥 시장이 벤처 붐과 IT 산업 성장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AI와 바이오, 반도체 소부장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