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단일 종목으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열풍이 직장인들의 근무 풍경까지 바꾸고 있다. 출근과 동시에 업무보다 실시간 주가를 먼저 확인하거나 근무 시간 중 화장실과 휴게공간에서 스마트폰으로 단기 매매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업무 공백과 집중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단순한 투자 열풍을 넘어 근무 시간마저 투자에 종속되는 문화가 기업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캉스 가시나요?"…출근 직후 화장실로 달려가는 직장인들의 비밀
최근 대기업 3년차 직장인 김승현 씨(31·남)는 매일 아침 출근 직후 화장실로 향한다. 김 씨가 화장실 칸에 머무는 목적은 생리현상 해결이 아닌 주식 거래다. 오전 9시 정규장 개장과 동시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가격이 크게 움직이는 만큼 타인의 시선을 받지 않고 거래할 수 있는 화장실이 가장 편한 장소가 됐다. 비슷한 이유로 화장실을 찾는 직장인들이 몰리면서 오전 9시 전후에는 변기 칸마다 사람이 들어차고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 줄이 생기는 일도 적지 않다. 직장인들 사이 화장실에서 개인 시간을 가지는 ‘화캉스(화장스+호캉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직장 내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직원 대부분이 약속이라도 한 듯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본다. “커피를 사 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직원들도 이동 중 실시간 종목 시세를 확인하거나 급하게 매매를 마친 뒤 복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점심시간 역시 또 다른 투자 시간이 됐다. 식당에서는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수익률이 대화의 중심에 오르고 일부 직장인들은 혼자 식사를 하며 스마트폰으로 호가창을 확인한다.
직장인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로는 높은 기대 수익률과 낮은 진입 장벽이 꼽힌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자산의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구조다. 예컨대 삼성전자 주가가 당일 10% 상승하면 해당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약 20%의 수익을 기록하는 구조다. 반대로 주가가 10% 하락하면 ETF는 20% 안팎의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상승장에서는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 역시 두 배로 확대되는 고위험 상품이다.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에 유입된 자금은 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직장인 한동석 씨(남·34)는 “SK하이닉스 본주의 주당 가격이 200만원이 넘는 상황에서 일반 직장인이 수량을 확보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크다”며 “레버리지 상품은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이른바 ‘인생 역전’을 위한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투자 열풍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초년생부터 팀장급 직장인까지 전 세대에 걸쳐 확산하는 양상이다. 서울 강남구 소재 기업의 팀장급 직원 최정욱 씨(42·남)는 “사내 선후배를 막론하고 모든 임직원의 최대 관심사는 주식 투자다”며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 증식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현재의 시장 상황을 자산 형성의 적기로 판단하고 뛰어드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시장 안팎에서는 직장 내 투자 열풍이 개인의 업무 효율 저하를 넘어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까지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근무 시간 중 실시간 주가 확인이나 단기 매매에 몰두하는 행태가 기업의 생산성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무 시간 중 스마트폰 사용 등 잦은 주의 분산이 노동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미국 온라인 교육 플랫폼 우데미(Udemy)가 발표한 ‘직장 내 집중력 보고서(Workplace Distraction Report)’에 따르면, 응답자의 69%가 업무 중 집중력 저하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대다수는 개인 스마트폰 사용을 업무 흐름을 끊고 효율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했다.
학술 연구 결과 또한 직장 내 집중력 분산이 기업에 초래하는 경제적 손실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 T.H. 챈 공중보건대학원 연구진이 미국 기업 근로자 32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분석에 따르면, 기업 전체 생산성 손실의 93.6%가 업무 도중 발생하는 집중력 저하와 주의 산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개인의 결근 및 병가로 발생하는 손실보다 약 15배나 큰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연구진은 업무 도중 스마트폰 확인 등으로 근로 흐름이 자주 끊길 경우 다시 이전 업무 단계로 복귀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인지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레버리지 투자 시장 과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도 규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특정 종목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쏠린 상황에서 레버리지 ETF의 자금 유출입이 단일 방향으로 집중될 경우 시장 변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레버리지 ETF의 시장 영향력을 언급하며 “제도 도입 과정에서 좀 더 면밀히 검토하고 막았어야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의 상장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주 레버리지 ETF 투자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재무적 위험을 넘어 소비 시장 위축과 기업 문화의 구조적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시중 유동 자금이 주식 시장으로 대거 쏠리면서 실물 경제를 뒷받침해야 할 소비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레버리지 투자가 가계의 실질 소비 여력을 잠식하며 전반적인 내수 침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열된 주식 투자가 직장인들의 업무 태도와 일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주위를 보면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소통하기보다 혼자 식사하며 호가창을 들여다보는 ‘혼밥’ 문화가 정착됐고 미국 증시 개장에 대비해 회식을 기피하고 퇴근 후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용과 투자용으로 스마트폰 2대를 운용하며 근무 시간 중 몰래 거래를 일삼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며 “이처럼 구성원 전체가 주식에 몰입된 사회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입사원부터 차장, 부장급 관리자까지 직급을 막론하고 주식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정상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며 “노동 집중도 저하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국가 경제의 근간인 노동 생산성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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