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레고를 미리 사뒀다가 단종 이후 수십만~수백만원의 차익을 남기는 이른바 ‘레고테크’의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단종 자체가 희소성을 보장하는 신호였지만 최근에는 레고사가 글로벌 유통망 확대와 인기 제품 재출시, 생산기간 연장 등 공급 전략을 적극 활용하면서 단종 프리미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보관 비용과 인플레이션, 짝퉁 제품 확산까지 겹치면서 ‘사두면 오른다’는 방식도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 레고 리셀 시장과 투자자들의 실제 사례를 분석한 결과 레고 재테크는 희소성보다 공급 전략을 읽는 능력이 수익을 좌우하는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종하면 오른다는 공식 깨졌다…레고사가 무너뜨린 희소성 프리미엄
최근 국내 주요 레고 커뮤니티에서는 2026년 6·7월 단종 예정(EOL·End of Life)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또 한 번 매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단종 직전 제품을 확보해 추후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려는 리셀러들이 잔여 물량 정보를 공유하며 구매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온라인 카페와 오픈채팅방에는 특정 제품의 재고 위치와 할인 판매 정보를 공유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이 단종 제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과거 성공 사례 때문이다. 글로벌 리셀 플랫폼 크림(KREAM)과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을 보면 스타워즈 UCS 시리즈나 만번대 대형 제품, 모듈러 시리즈 일부는 단종 이후 정가 대비 수 배의 웃돈이 붙으며 거래됐다. 타지마할과 디즈니 성은 한때 200만원을 웃도는 시세를 형성하며 레고테크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현장 전문가들과 시장 데이터는 현재 시장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가장 큰 변화는 레고사가 희소성 자체를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단종이 곧 공급 종료를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인기 제품을 리뉴얼해 다시 출시하거나 생산 기간을 연장하고 글로벌 직영몰 공급량을 확대하는 사례가 늘면서 단종 프리미엄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워즈 UCS 데스스타다. 단종 이후 중고 시세가 600만원까지 치솟았던 제품번호 10188은 레고사가 일부 피규어와 부품을 변경한 후속 모델(75159)을 출시하면서 중고가격이 10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스타워즈 UCS 밀레니엄 팔콘도 상황은 비슷하다. 초창기 한정판 모델(10179)은 레고 리셀 시장의 ‘황제주’로 불렸지만 부품 수를 크게 늘린 신형(75192)이 출시되면서 희소성이 크게 약화됐다. 더욱이 신형 제품의 단종 시기까지 수년째 연장되면서 현재 리셀 시장에서는 정가 이하 매물까지 등장하고 있다.
랜드마크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200만원을 넘던 타지마할(10189)은 브릭 분리기 하나만 추가한 리뉴얼 모델(10256)이 출시되자 시세가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디즈니 성(71040) 역시 피규어와 색상을 변경한 후속작(43222)이 출시되면서 기존 미개봉 제품의 프리미엄이 사실상 사라졌다.
이 밖에도 포르쉐 911 GT3 RS(42056), 모듈러 백화점(10211), 팰리스 시네마(10232), 핫로드(10151), 컨테이너선(10152), 아이디어즈 트리하우스(21318), 배트모빌(76139) 등도 후속작 출시나 생산 연장으로 가격이 하락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리셀 시장을 분석해 온 김태형 씨(36·가명)는 “해외 유출 정보를 바탕으로 단종 예정 제품을 대량 확보해도 레고사가 글로벌 판매 데이터를 근거로 생산을 연장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기다릴수록 가격이 오른다는 공식이 깨지면서 자금이 장기간 묶이고, 이를 버티지 못한 매물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면서 가격이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출시보다 무서운 건 보관비…‘레고테크’도 포트폴리오 시대
레고 재테크는 단순히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물 자산이라는 특성상 보관 비용과 관리 리스크도 수익률을 크게 좌우한다. 대형 제품은 보관 공간 확보를 위해 창고를 임대하거나 주거 공간 일부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스에 작은 찌그러짐이나 습기 흔적만 생겨도 상품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개봉하는 순간 투자 가치 역시 상당 부분 사라진다. 최근에는 중국 C커머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정교한 카피 제품까지 대량 유통되면서 중고 거래 시장에 대한 신뢰도도 예전보다 낮아지고 있다.
이에 장기간 레고 리셀 시장을 경험한 투자자들은 투자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처럼 만번대 대형 제품을 장기간 보유하기보다 보관 부담이 적고 수요가 꾸준한 피규어나 GWP(구매 증정품), 소형 한정판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방식이다.
직장인 장현우 씨(32)는 “스타워즈 대형 제품은 재출시와 보관 비용 부담이 너무 커 더 이상 매입하지 않는다”며 “요즘은 GWP 행사 때 소형 제품을 확보한 뒤 단종 직후 빠르게 매도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잘못된 투자 정보만 믿고 손실을 본 사례도 적지 않다. 직장인 최민성 씨(34·가명)는 “단종되면 무조건 오른다는 말을 믿고 스타워즈와 테크닉 대형 제품을 여러 개 샀는데 생산 연장과 재출시가 이어지면서 자금이 장기간 묶였다”며 “최근에는 습기로 박스 상태까지 나빠져 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처분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생 박준영 씨(26·가명)는 해외 레고 정보 사이트의 단종 데이터를 꾸준히 분석해 아키텍처와 아이디어즈 시리즈를 할인 기간에 매입한 뒤 단종 직후 품귀 시점에 판매해 정가보다 약 40% 높은 가격에 되팔았다.
오프라인 완구 매장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단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매집 수요가 늘고는 있지만 매장도 재고를 과도하게 확보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레고사가 언제든 생산을 연장하거나 재출시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예전처럼 자신 있게 대량 매입하는 투자자는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일부 제품의 성공 사례만 보고 레고테크 전체를 고수익 투자로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희소성을 결정하는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레고인 만큼 기업의 공급 정책에 따라 시장 가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플레이션과 실물 보관 비용, 공급 정책 변화 등을 함께 고려하지 않은 리셀 투자는 기대와 달리 장기간 재고 부담과 자산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제 레고는 단순히 단종 여부만 보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 공급 정책과 소비 트렌드까지 함께 분석해야 하는 투자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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