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시장에서는 ‘과도한 기대가 반영된 거품’이라는 평가와 ‘실적이 뒷받침되는 저평가 구간’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두 기업은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주도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각에선 AI 투자 과열과 중국 반도체 기업의 추격, 대규모 설비투자 부담 등을 이유로 밸류에이션 부담을 경고하고 있다.
이에 르데스크는 반도체 기술과 증시, 거시경제 분야 전문가들의 진단을 토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재 기업가치와 장기 성장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점검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주가 변동과 AI 산업의 장기 성장성을 분리해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두 기업의 기술 경쟁력과 메모리 수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했다.
“거품인가, 황금매수 구간인가”…급락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전문가 4인의 진단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종가 기준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8.76% 내린 23만9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같은 시간 SK하이닉스도 8.79% 하락하며 160만원 선이 무너졌다. 지난달 30일 종가와 비교하면 삼성전자는 33만3000원에서 23만9500원으로 약 28%, SK하이닉스는 264만원으로 약 40% 급락했다. 두 종목은 최근 장중 10% 안팎의 급등락을 수차례 반복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주가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조정받으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하락세가 ‘거품 붕괴의 시작’인지 아니면 실적과 성장성을 고려할 때 과도한 조정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려면 단순한 주가 흐름뿐 아니라 AI 반도체 산업의 성장성과 기술 경쟁력, 실제 수요, 거시경제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AI 산업이 성장하는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성장동력인 HBM 시장도 중장기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AI 반도체에는 HBM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며 “AI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HBM 수요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TSMC에 뒤처져 있지만 메모리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고, SK하이닉스 역시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미국 반도체 기업의 추격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분간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미국 마이크론이 후발주자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HBM 분야에서는 여전히 1~2년 정도의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며 “반도체 산업에서 1~2년의 기술 격차는 실제 양산 경쟁력에서는 3년 이상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HBM은 범용 D램과 달리 여러 개의 메모리를 수직으로 적층하는 구조여서 제조 난도가 매우 높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 지위가 단기간에 흔들리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기술력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세계 1~2위권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며 “메모리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이 시장을 사실상 두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고급 HBM을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은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정도다”며 “중국 메모리 업체들은 HBM 생산에 필요한 핵심 공정과 장비, 특히 베이스 다이(Base Die) 제작과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여전히 상당한 기술적 제약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이크론도 HBM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지만 최고 수준의 차세대 제품에서는 국내 기업들에 미치지 못하는 단계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최근 주가 급등락을 근거로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평가하는 데 대해서도 경계했다. 그는 “최근 증시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반도체 업황 전망이 바뀌지만 기업의 기술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비가 오면 날씨가 나쁘고 해가 뜨면 좋다고 평가하는 것과 비슷한 단기 해석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서는 현재 주가가 AI 산업의 성장성과 향후 메모리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메모리와 AI 기판 수요 충족률은 약 60% 수준에 불과하다”며 “빅테크 기업들은 AI 투자에서 과잉투자보다 과소투자의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어 공급 부족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올해 충족되지 못한 메모리 수요가 내년으로, 내년 수요가 그다음 해로 넘어가는 ‘수요 이월’ 현상이 향후 최소 3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신규 메모리 공장을 완공하고 정상 가동하기까지 통상 3년 이상이 걸리는 만큼 공급 부족은 2029년 이후에야 점진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 본부장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수요도 메모리 반도체 업황을 뒷받침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와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현재 데이터센터 공급 능력을 뛰어넘는 고객 수요를 확보하고 있으며 애플 역시 메모리 공급 부족으로 제품 생산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지속되면 메모리 수요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주주환원 확대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현재 주가는 지나치게 저평가된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거시경제 전문가도 단기적인 주가 변동성과 별개로 AI와 반도체 산업의 장기 성장 흐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AI 산업 자체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이다”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규모 자체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전례가 없는 만큼 시장의 불확실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며 “다만 AI 혁신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인간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변화라는 점에서 과거 닷컴버블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가 앞으로 산업과 사회 전반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는 방향성 자체는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어떤 기업이 AI 대전환 국면에서 최종 승자가 될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AI 시대의 수요를 선제적으로 창출하는 기업들이 장기적인 성장 흐름과 궤를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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