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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빌딩 역사가 국사책? K-경제 · 사회 · 문화의 축소판 ‘63빌딩’
[영상]빌딩 역사가 국사책? K-경제 · 사회 · 문화의 축소판 ‘63빌딩’
[사진=서울관광재단]

 

여러분, 오늘 이야기는요. 드라마로 쓴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한데요?”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파란만장한 한 건물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이야 롯데월드타워, 해운대 엘시티처럼 초고층 빌딩이 많지만 한때 대한민국에서 ‘높은 건물’ 하면 떠오르는 건 딱 하나였습니다. 바로 63빌딩이죠. 그런데 이 건물, 그냥 높기만 했던 게 아닙니다. 탄생부터 전성기, 그리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변화까지 그 안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오늘은 63빌딩이 어떻게 탄생했고, 한때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무모한 도전과 거친 땀방울, 끝내 아시아의 하늘을 찌르다]

시간를 1980년대로 한번 돌려볼게요. 63빌딩을 처음 지은 곳은 지금의 주인인 한화그룹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재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던 신동아그룹, 그리고 최순영 회장이었죠. 당시 대한생명을 거느리고 있던 신동아그룹은 어느 날 여의도 모래벌판에 “동양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겠다”고 선언합니다. 지금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당시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재계도, 언론도 전부 “일본도 중국도 아니고 한국이? 그게 가능할까?”라고 평가 했습니다.


1980년 2월, 드디어 첫 삽을 뜹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60층이 넘는 건물을 짓는다는 건 거의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해지죠. “이걸 대체 누가 지었고, 정말 100% 우리 기술이었을까?” 시공은 신동아그룹 계열사였던 신동아건설이 직접 맡았습니다. 다만 100% 국내 기술만으로 지은 건 아니에요. 당시엔 우리나라에 초고층 건물을 지어본 경험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기본 설계는 미국 건축가 해리 솜(Harry Som) 측의 도움을 받고요. 지진과 강풍을 버티는 핵심 구조 설계에도 미국과 일본의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엘리베이터와 각종 설비에도 해외 기술이 활용됐고요. 그래도 실제로 그 거대한 철골을 하나하나 올려 건물을 완성한 건 결국 우리 한국의 건설 기술자와 근로자들이었습니다. 해외의 초고층 기술을 현장에서 직접 익혀가며 무려 5년 3개월이나 동안 공사를 이어갔어요. 그렇게 투입된 공사비만 당시 돈으로 약 1,800억 원. 당시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리고 5년 뒤인 1985년, 마침내 63빌딩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당시 높이는 무려 249미터. 일본 도쿄의 선샤인 60을 제치고 한때 아시아 최고층 빌딩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죠. 그런데 높이만 대단했던 게 아닙니다. 63빌딩 하면 역시 이 번쩍이는 황금빛 외관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건물 외벽에는 1만 3천여 장의 유리가 붙어 있는데, 그냥 노란색 유리가 아닙니다. 준공 당시에는 유리 표면에 24K 순금을 아주 얇게 입힌 반사유리를 썼거든요. 덕분에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건물 색깔도 조금씩 달라지죠. 이 유리는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장식은 아니었고요. 햇빛과 열을 반사해 냉방 효율을 높이는 당시 최첨단 소재였습니다. 건물 자체도 엄청 튼튼하게 설계돼서 초속 40미터의 강풍과 진도 7 수준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당시 기준으로 보면 63빌딩은 높이부터 외관, 구조 기술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 건축 기술의 집약체였습니다.


[한강의 기적, 그 역사의 증명사진]

63빌딩이 특별한 건 단순히 높아서만은 아닙니다. 왜 하필 1980년대에 이런 거대한 빌딩을 세워야만 했을까요? 사실 당시 대한민국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서울로 쏠리는 거죠. 한국은 이때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가 불과 몇십 년 만에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말이죠. 그걸 가장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상징물이 바로 63빌딩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당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한강변에 우뚝 솟은 황금빛 초고층 빌딩은 꽤나 강렬한 풍경이었는데요. 63빌딩은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눈으로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상징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63빌딩에 영광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을 때죠. 63빌딩을 세웠던 신동아그룹 역시 결국 해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여기에 그룹을 이끌던 최순영 회장도 구속되는 사건이 생기면서 신동아의 시대는 막을 내렸죠.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63빌딩은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는데, IMF를 거치면서 그 건물을 세운 그룹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거예요. 이렇게 보면 63빌딩은 말 그대로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건물이죠. 63빌딩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 경제의 굴곡도 함께 보입니다. 


[한국 재벌 기업들의 피 튀기는 63빌딩 쟁탈전]

63빌딩은 단순한 건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업들에겐 더 그랬죠. 서울 한복판, 그것도 여의도 한강변에서 1년 내내 황금빛으로 빛나는 초고층 빌딩. 여기에 자기 회사 간판을 단다는 건 단순히 좋은 사옥 하나를 갖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이걸 서울 전역에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광고판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신동아그룹이 무너지고 63빌딩의 주인이 바뀔 상황이 되자 재계의 관심도 상당했습니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다 한 번씩은 63빌딩 꼭대기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는거죠. “저 높은 꼭대기에 우리 로고를 달면 서울 시내 어디서든 다 보일텐데” 심지어 그 자리가 여의도의 재물운을 끌어모으는 명당이라는 풍수지리 이야기까지 돌아서요. 당시 언론계에서는 기업들이 극비리에 TF팀까지 꾸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그룹이 탐내던 63빌딩의 새 주인이 된 곳이 바로 한화그룹이죠. 2002년 한화가 대한생명 인수에 성공하면서 63빌딩까지 품게 된 건데요. 당시 김승연 회장이 대한생명 인수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이 인수를 계기로 한화는 금융사업을 크게 키웠고, 그룹 덩치도 단숨에 커지게 됩니다. 지금도 이 인수전은 꽤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는데요. 단순히 건물 하나의 주인이 바뀐 게 아니라, 한화의 사업 구조와 재계에서의 위상까지 크게 바꿔놓았기 때문입니다.


[“너 63빌딩에서 황금빛 재물의 기운 받아봤어?”]

기업들에게 63빌딩이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꿈의 장소였습니다. 1980~90년대만 해도 지방에서 서울 구경을 오면 63빌딩은 거의 필수 코스였는데요. 특히 수학여행으로 서울에 온 학생들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죠. 저도 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63빌딩을 처음 봤었거든요. 진짜 고개를 한껏 젖혀서 올려다보는데 목이 너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완전 문화충격이었죠.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자동차가 개미만 하다”며 감탄하는 것. 당시엔 이게 서울 관광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63빌딩 한번 올라가 보는 게 하나의 로망이었던 시절이죠.

물론 63빌딩이 인기였던 건 높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지하에는 당시로선 보기 힘들었던 ‘63 씨월드’ 수족관이 있었고, 거대한 화면을 자랑하는 아이맥스 영화관까지 들어서 있었죠. 당시에 신혼부부들이 서울에 신혼여행을 와서는 63빌딩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고향에 돌아가 “나 거기서 상어 보고 왔다”고 자랑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만큼 63빌딩은 국민들에게도 특별한 장소였던 거죠. 


63빌딩은 외국인에게도 인기였습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63빌딩의 인기가 상당했는데요.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황금색을 부와 재물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이 거대한 황금빛 빌딩 자체가 꽤 특별하게 받아들여진 거죠. 당시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63빌딩의 황금색 벽을 직접 손으로 만지면 부자가 된다”,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복이 온다”는 식의 이야기도 퍼졌다고 합니다. 63빌딩이 외국인들에게도 한번쯤 꼭 들러 사진을 남기는 서울의 대표 명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가장 높지는 않지만 가장 깊이 빛나는 마천루]

오늘날 63빌딩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아닙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나 부산의 초고층 빌딩들과 비교하면 높이 순위에서는 이미 한참 밀려났죠. 하지만 63빌딩이 가진 역사와 상징성만큼은 쉽게 따라올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건설 기술의 성장을 보여줬고, 외환 위기의 과정도 전부 지켜봤죠. 여기에 수학여행의 설렘을 안고 전망대에 올랐던 사람들, 황금빛 건물을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들의 추억까지 한층 한층 쌓여 있습니다. 혹시 오늘 한강을 지나다 멀리서 황금빛 63빌딩을 보게 되신다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이자 그리고 지금도 그 시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건물. 63빌딩 이야기였습니다.

기사 속 Q&A
Q1. 63빌딩은 왜 황금색으로 보이나요?
A. 63빌딩이 황금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준공 당시 외벽에 24K 순금을 얇게 입힌 반사유리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유리는 햇빛과 열을 반사해 냉방 효율을 높이는 기능도 했습니다. 현재는 외벽 유리가 교체되어 당시의 순금 반사유리가 그대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황금빛 이미지는 63빌딩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Q2. 63빌딩은 원래 한화그룹 건물이었나요?
A. 아닙니다. 63빌딩은 원래 신동아그룹이 대한생명의 사옥으로 건설한 건물입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신동아그룹이 해체되면서 대한생명이 매각 대상이 되었고, 2002년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63빌딩도 함께 소유하게 됐습니다. 이후 63빌딩은 한화그룹의 대표 상징 건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Q3. 63빌딩은 왜 한국 현대사의 상징으로 불리나요?
A. 63빌딩은 198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초고층 건축 기술을 상징하는 대표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안게임와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기에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되었고, 이후 IMF 외환위기와 기업 구조조정, 한화그룹 인수까지 겪으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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