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을 타고 관련 중고 상품의 가격이 단기간에 치솟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영화 개봉 이후 관련 서적과 굿즈를 찾는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는 데다 절판·단종 등으로 공급까지 제한되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열풍이 지나간 뒤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다시 떨어지는 사례도 반복되면서 실제 상품 가치보다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이른바 ‘흥행 프리미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지난 5일 개봉한 이후 13일 만에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오디세이’는 10년간 이어진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왕의 부재를 틈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포함한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서적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어린이·청소년 사이에서 학습만화로 인기를 끌었던 가나 출판사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절판본을 다시 찾는 이들이 늘면서 중고 시장에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홍은영 작가가 그린 구판이다. 해당 시리즈는 본편 20권과 특별판 5권 등 총 25권으로 완결됐지만, 홍 작가가 그린 1~18권은 작가와 출판사 간 인세 분쟁 이후 출판 정지 판결이 내려지면서 절판됐다. 이후 다른 작가가 그림을 맡은 새 시리즈가 출간됐다. 현재는 새 책을 구할 수 없는 데다 2000년대 이 만화를 읽었던 세대의 수요까지 몰리면서 홍 작가판에 높은 웃돈이 붙고 있다.
현재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서 ‘그리스로마신화 만화’를 검색하면 약 65개의 판매 게시물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영화 개봉 이후 올라온 게시물이 절반을 넘는 38건이다. 상당수가 가나출판사에서 출간한 구판으로 홍 작가가 그린 1~19권 중 일부만 포함된 세트가 80만원에 매물로 올라오는가 하면 낱권 한 권에 8만원을 요구하는 판매자도 있었다.
중고시장에 붙은 ‘오디세이 프리미엄’이 영화 흥행 이후에도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과거에도 영화나 영상 콘텐츠가 흥행하면서 관련 수집품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했다가 열풍이 식은 이후 최근에는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과거 ‘바비’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 흥행 당시에도 관련 인형과 농구화 등 상품 가격과 관심이 크게 높아졌지만 현재는 당시보다 낮은 가격대의 매물이 나타나고 있다.
2023년 영화 ‘바비’ 개봉 당시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연예매체 TMZ는 당시 영화에서 배우 마이클 세라가 연기한 ‘앨런(Allan)’이 인기를 끌면서 단종된 빈티지 앨런 인형의 가격이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앨런은 1964년 바비의 남자친구인 켄의 친구 캐릭터로 처음 출시됐다가 이후 생산이 중단된 제품이다.
TMZ에 따르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하기 하루 전인 2023년 7월 20일까지만 해도 이베이에서 빈티지 앨런 인형은 35~76달러(약 5만~11만원) 수준에 매물로 나왔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앨런 캐릭터가 주목받으면서 가격은 불과 며칠 사이 크게 뛰었다. 같은 달 25일에는 중고 앨런 인형 한 점에 350달러(약 50만원)까지 입찰이 붙었고, 미사용 상태의 제품은 605달러(약 85만원)를 시작가로 내건 매물도 등장했다. 영화 속 조연 캐릭터의 인기가 약 60년 전 단종된 인형의 몸값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영화 개봉 3년이 지난 현재 당시의 열기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현재 이베이에서는 빈티지 앨런 인형이 제품 상태와 구성 등에 따라 150~265달러(약 21만~37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영화 개봉 직후 일부 제품에 350달러까지 입찰이 붙고 600달러가 넘는 시작가가 등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당시의 과열된 분위기는 상당 부분 가라앉은 셈이다.
또 지난 2023년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 역시 마찬가지다. 슬램덩크는 당시 핵심 소비층인 3040세대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입으며 슬램덩크 주인공들이 신은 한정판 농구화부터 굿즈에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당시 굿즈 구입을 위해 ‘오픈런(개점 전부터 대기하는 행위)’ 행렬까지 이어졌다.
지난 2023년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비슷한 사례다. 영화가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흥행하자 원작 만화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신었던 농구화와 관련 굿즈까지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부 굿즈를 구하기 위해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행렬까지 이어졌다. 대표적인 제품이 주인공 강백호가 처음 신었던 농구화로 알려진 ‘에어조던6 인프라레드’다. 원작에서 강백호가 착용한 모델로 유명해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강백호 신발’로 불렸다. 영화가 한창 인기를 끌던 2023년 당시 에어조던6 인프라레드는 리셀 시장에서 30만원대에 거래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
현재는 당시와 비교해 에어조던6 인프라레드 모델의 가격대가 낮아진 모습이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에서는 최근 다른 컬러의 에어조던6 인프라레드 모델이 11만5000원에 올라와 있다.
전문가들은 영화 흥행으로 특정 상품에 단기간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할 수 있지만 흥행 열기가 식으면 수요와 가격도 다시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영화가 과거 콘텐츠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관련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단기간에 늘어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절판·단종 상품은 공급이 제한돼 있어 수요가 갑자기 늘면 가격이 크게 오르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영화 흥행으로 발생한 수요가 지속적이지 않을 수 있다”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면 관련 상품을 찾는 소비자도 감소해 흥행 당시 붙었던 프리미엄이 빠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일시적인 가격 거품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