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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공동중개가 만든 주거침입 사각지대
“자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공동중개가 만든 주거침입 사각지대

공동중개가 보편화된 이후 사전 연락이나 동의 없이 중개사가 손님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는 일이 잇따르면서 주거권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거주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공간에 들어갈 경우 처벌받을 수 있지만, 해외 일부 지역과 달리 매물을 보여주기 위한 사전 통지나 출입 절차가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일 소셜미디어 스레드에는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 없는 낯선 공인중개사가 사전 연락 없이 집에 들어왔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피해자 A씨는 “오늘 집에서 옷도 안 입고 자고 있었는데 미리 상의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내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도 않은 공인중개사가 문을 열고 손님과 함께 들어왔다”고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그는 이사를 앞두고 집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였다. 앞서 여행을 떠났을 당시 집을 보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한 공인중개사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날 집에 들어온 중개사는 A씨가 직접 비밀번호를 알려준 사람이 아니었다. A씨는 해당 중개사가 다른 중개사를 통해 비밀번호를 전달받은 것으로 추정하며 사전 연락이나 동의조차 없이 집에 들어온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후 A씨는 비밀번호를 전달한 중개사와 실제 집에 들어온 중개사 양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냥 사과를 받고 넘어가야 할지, 주거침입으로 고소해야 할지 고민된다”며 사전 동의 없이 이뤄진 출입에 대해 법적 대응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 공동중개 과정에서 공유된 현관 비밀번호로 인해 거주자의 동의 없이 공인중개사가 집에 들어오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공인중개사의 무단 주거침입 피해 사례가 담긴 게시글의 모습. [사진=스레드 갈무리]

 

해당 게시글은 현재 116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댓글도 500개 넘게 달리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댓글에는 A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경험담도 잇따랐다. 한 누리꾼은 “건물에 첫 입주자로 들어와 입주 완료 스티커를 입구에 붙여놨는데 샤워하고 나오는 순간 마스터키로 여성 2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며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또 다른 누리꾼 역시 과거 집을 보여주기 위해 한 공인중개사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뒤 다른 중개사가 이를 이용해 집에 들어오려 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이전에 집을 보러 왔을 때 집에 없어서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며 “며칠 뒤 자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려고 해 소리를 질렀는데 알고 보니 또 다른 공인중개사였다”고 밝혔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노출된 비밀번호가 범죄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서울의 한 주택에서는 집을 보러 온 남성이 중개사가 입력하는 비밀번호를 뒤에서 몰래 확인한 뒤 약 20분 만에 혼자 다시 찾아와 무단 침입했다. 이 남성은 집 안에 있던 385만원 상당의 금품과 신용카드를 훔쳐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지난 2015년 서울 마포에서는 월세방을 구하는 것처럼 행세하며 중개사가 입력하는 현관 비밀번호를 외운 뒤 빈집에 침입하는 수법으로 원룸 10곳에서 약 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듬해 경기 일산에서도 월세방을 보러 다니며 중개사가 입력하는 비밀번호를 확인한 뒤 다시 찾아가 금품을 훔친 남성이 검거되기도 했다.

현행법상 공인중개사가 중개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임의로 제3자에게 전달할 경우 공인중개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 다만 공동중개가 보편화되면서 중개업소 간 매물 정보 공유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만큼 현관 비밀번호와 같은 출입 정보까지 공유되는 것을 현장에서 일일이 파악하고 제재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인중개사법 제29조 제2항은 ‘개업공인중개사등은 이 법 및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개업무를 그만둔 이후에도 같은 의무가 적용된다. 같은 법 제49조는 제29조 제2항을 위반해 업무상 비밀을 누설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중개를 위해 특정 공인중개사에게 제공한 현관 비밀번호가 법에서 정한 ‘업무상 알게 된 비밀’에 해당한다면 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다른 중개사에게 전달하는 행위 역시 법 위반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비밀번호는 단순한 매물 정보를 넘어 거주자의 주거공간에 직접 출입할 수 있는 정보라는 점에서 관리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인중개사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은 중개사무소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행법은 공인중개사가 일정 수준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자격 및 중개사무소 개설등록과 관련한 결격사유 등이 발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현관 비밀번호 공유가 실제 공인중개사법상 비밀누설에 해당하는지와 처벌 시 행정처분 범위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해외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택 방문 전 사전 통지와 거주자 동의 등 출입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에서 주택이 임대로 나와 있는 모습. [사진=SeattleN]

 

해외에서는 주택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거주자의 동의나 정해진 출입 절차를 위반할 경우 실제 중개사 징계나 벌금 등의 제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중개사가 매물 주택의 락박스 비밀번호를 고객에게 전달해 중개사 없이 집을 둘러보도록 한 사실이 적발됐다. 해당 중개사는 3개월 자격정지와 1만5000캐나다달러(약 1500만원)의 벌금, 1500캐나다달러(약 151만원)의 집행비용 및 추가 교육 이수 처분을 받았다.
 
호주 퀸즐랜드주 역시 임대 중인 주택을 잠재적 매수자나 세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출입할 경우 원칙적으로 최소 48시간 전에 서면으로 출입 사실을 알려야 한다. 현지 임대차 당국은 이 같은 절차를 위반한 불법 출입을 단속 대상으로 두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경고와 범칙금 부과, 기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영국 잉글랜드에서는 집주인이나 그 대리인의 무단출입이 세입자를 퇴거시키기 위한 괴롭힘 등에 해당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현행 제도상 지방당국은 불법 퇴거나 괴롭힘에 대해 기소하거나 최대 4만파운드(약 7545만원)의 민사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동중개 자체는 거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상적인 중개 방식이지만 이 과정에서 현관 비밀번호와 같은 출입 정보까지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현관 비밀번호는 단순한 매물 정보와 달리 주거공간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인 만큼 일반적인 매물 정보보다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공동중개는 거래 활성화와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위해 필요한 중개 방식이지만 공동중개를 한다는 이유로 중개 과정에서 취득한 모든 정보를 다른 중개사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특히 현관 비밀번호는 거주자의 안전과 사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보인 만큼 매물 정보와 구분해 별도의 동의 절차나 관리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사 속 Q&A
Q1. 공인중개사가 동의 없이 집 비밀번호를 다른 중개업소와 공유하는 것은 불법인가?
A. 공인중개사법 제29조 제2항은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는 것을 금지하며, 현관 비밀번호는 단순 매물 정보가 아닌 주거 출입 권한이 걸린 업무상 비밀에 해당한다.
Q2. 사전 연락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중개사를 주거침입죄로 고소할 수 있나?
A. 거주자의 명시적·추정적 의사에 반해 주거지에 들어간 경우 형법상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특정 중개사에게 전달했더라도 동의 없는 타 중개사의 출입은 주거권 침해에 해당한다.
Q3. 공동중개 시스템에서 현관 비밀번호가 쉽게 유출되는 이유는?
A. 여러 중개업소가 하나의 매물을 공유하는 '공동중개' 과정에서 매물 정보(가격, 위치)와 함께 출입 정보(비밀번호)가 중개사 간 단체 대화방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무분별하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현행 제도상 출입 정보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과 단속 체계가 미비한 것도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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