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이면 피규어와 캐릭터 굿즈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시대지만 서브컬처 소비자들의 발길은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으로 향하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을 넘어 매장을 돌며 희귀 굿즈를 찾아다니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으면서 대형 복합쇼핑몰들도 기존 패션·의류 매장을 줄이고 서브컬처 전문 공간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24일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는 실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대량 생산되는 피규어와 굿즈의 특성상 같은 제품이라도 도색 상태나 조형, 미세한 파손 여부 등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판매자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설명에 의존해야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여러 제품을 직접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상태가 좋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피규어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얼굴이나 눈의 도색 위치, 접합부 마감 등 작은 차이도 상품 만족도를 좌우하는 요소로 꼽힌다. 같은 제품이라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체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구매 전 실물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소비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크레인 뽑기(UFO 캐처) 등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경품 피규어를 국내 오프라인 매장에서 확정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현지에서는 원하는 상품을 얻을 때까지 여러 차례 비용을 지불해야 해 실제 획득 비용을 예상하기 어렵지만 국내 전문매장에서는 일정한 가격만 지불하면 상품을 바로 가져갈 수 있다.
가격 경쟁력도 일부 소비자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들이는 요소다. 온라인 판매가격이 항상 저렴한 것은 아니다. 상품 가격 자체는 온라인이 낮더라도 배송비가 추가되거나 해외 구매 과정에서 별도 비용이 발생하면 최종 결제가격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오프라인 매장은 배송비가 들지 않고 일부 상품은 온라인 최저가보다도 낮게 판매되는 경우가 있어 직접 방문할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용산 복합쇼핑몰에서 만난 서진수 씨(가명·남·27)는 “인터넷은 연출된 사진만 보고 사야 하지만 매장에서는 도색 마감이나 파손 여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불량 위험을 없앨 수 있다”며 “배송비 부담이 없는 데다 일부 상품은 인터넷 최저가보다 현장 매장가가 3000~4000원 정도 더 저렴하게 판매돼 매장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매장이나 팝업스토어에서만 판매하는 단독 한정판 상품 역시 팬덤을 현장으로 불러 모으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정 행사나 매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상품은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만으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희소성이 높은 한정 수량 굿즈를 확보하기 위해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 줄을 만드는 이른바 ‘오픈런’ 역시 오프라인 서브컬처 상권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용산의 한 게임 팝업스토어를 찾은 김안석 씨(35·남)는 “온라인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현장 팝업스토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한정판 굿즈가 있어 찾아왔다”며 “원래 사려 했던 상품은 일찍 품절돼 아쉽지만 매장에 진열된 다른 특별 상품들을 둘러보며 구매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서브컬처 소비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여가 활동으로 발전했다는 점도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원하는 상품을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한 뒤 바로 결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상품을 발견하는 이른바 ‘디깅(파고들기)’ 문화가 형성돼 있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실시한 캐릭터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캐릭터 상품 구매 경험률은 79.8%에 달했다. 캐릭터 상품 이용 경험률도 91.7%로 나타났다. 특히 팝업스토어 방문 경험률은 46.3%로 전년보다 0.8% 상승했으며 팝업스토어·전시회·행사·공연 등 오프라인 공간에서 캐릭터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58.4%에 달했다.
특히 홍대와 용산 등 전문매장이 밀집한 상권에서는 한 매장을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점포를 하루 동안 연이어 돌아보는 소비 문화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굿즈를 구경하거나 다른 매장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 홍대 상권을 찾은 이연 씨(여·18)는 “온라인 구매가 편리하단 건 알지만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예상치 못했던 굿즈를 발견하는 재미가 훨씬 크다”며 “강원도에도 일부 판매처가 있지만 서울은 전문 매장이 밀집해 있어 하루 동안 여러 곳을 돌며 둘러볼 수 있어 굿즈 쇼핑 여행으로 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비문화는 점포 확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홍대 상권의 한 서브컬처 전문점은 높은 수요에 힘입어 1년여 만에 인근에 2호점과 3호점을 잇달아 출점하며 몸집을 불렸다. 일반 소매점이 온라인 쇼핑 확대와 경기 침체로 점포 수를 줄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해당 매장 관계자는 “최근에는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찾는 발길이 급증해 다른 매장도 연이어 열게 됐다”며 “일반 상품은 온라인 구매 비중이 높지만 피규어나 굿즈는 소비자가 현장에서 실물을 보고 고르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소비해 신상품 입고 주기에 맞춰 매장을 찾는 정기 고객과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 매출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브컬처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으로 몰리면서 대형 복합쇼핑몰과 집단 전자상가의 MD 구성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으로 집객력이 약화된 일부 패션·의류나 전통 전자제품 매장의 빈자리를 대규모 피규어숍과 캐릭터 굿즈 매장, 팝업스토어 등이 채우는 모습이다. 쇼핑몰 입장에서도 반복적으로 신상품을 구매하고 특정 브랜드나 캐릭터를 보기 위해 매장을 찾는 팬덤 소비가 새로운 집객 수단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대표적으로 용산 아이파크몰은 기존 리빙·패션 구역 일부를 개편해 취향 소비 특화 공간인 ‘도파민 스테이션’을 조성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캐릭터 굿즈 등 다양한 서브컬처 콘텐츠를 한 공간에 모으면서 개장 1년 만에 누적 방문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AK플라자 홍대점 역시 대형 애니메이션 굿즈 전문점과 팝업스토어를 전면에 배치하며 기존 패션몰에서 서브컬처 중심의 오프라인 랜드마크로 빠르게 변신했다. 현재 4층과 5층은 서브컬처 전용 층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다른 층에서도 각종 서브컬처 팝업과 판매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변 홍대·연남 상권의 개별 전문매장과도 연계되면서 서브컬처 소비자들이 하루 동안 머무르는 주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서브컬처의 오프라인 소비를 디지털 소비 환경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표적인 ‘체험형 공간 전략’으로 분석했다. 온라인 쇼핑이 상품을 빠르고 편리하게 구매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서브컬처 전문매장은 상품을 보고 고르고 발견하는 과정까지 하나의 콘텐츠로 제공하면서 소비자에게 별도의 효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수많은 실물 상품이 진열된 공간에 직접 들어서서 느끼는 시각적·공간적 만족감은 화면 중심의 온라인 쇼핑으로는 대체하기 어렵다”며 “실물을 직접 확인하고 손에 쥐는 과정 전체가 소비자에게 효용을 제공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디지털 소비가 일상화될수록 물리적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체험 욕구가 반작용으로 커지며 오프라인 매장이 상품 판매처를 넘어 명확한 방문 목적지가 된 구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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