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2일 개막하는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황금사자상을 두고 맞붙는다. 2000년 이후 세계 3대 영화제인 칸·베를린·베니스 경쟁부문 진출작을 전수 분석한 결과 한국은 47편 가운데 19편이 수상해 40.4%의 높은 수상률을 기록한 반면 일본은 68편을 진출시키고도 수상작은 17편(25.0%)에 그쳤다. ‘적은 편수로 높은 수상 타율을 기록한 한국’과 ‘더 많은 작품을 꾸준히 진출시킨 일본’이라는 대비가 뚜렷하다. 반면 경제적 성과에서는 일본 진출작의 글로벌 박스오피스 합산액이 한국의 약 3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해고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남편 상우 등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겨진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설경구와 전도연이 해고노동자 부부를, 조여정과 조인성이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를 맡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돼 칸 영화제 출품은 불가능해진 대신 베니스를 발판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진출을 노린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창동 감독으로서는 2002년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의 베니스 경쟁부문 진출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룩백’은 원작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제작돼 국내 관객 30만명을 동원하고 세계적으로 20억4000만엔의 흥행 수입을 올린 화제작을 실사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레에다 감독이 각본과 연출, 편집을 모두 맡았다. 2019년 ‘진실’ 이후 7년 만의 베니스 방문이자 개인 통산 네 번째 경쟁부문 진출이다. 올해 베니스 경쟁부문에는 두 작품을 포함해 세계적 거장들의 신작 21편이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쟁하며 수상 결과는 폐막일인 9월 12일 발표된다.
‘거장들의 진검승부’… 황금종려상·오스카 넘나드는 26년 라이벌사
아시아를 넘어 세계 영화계를 주도해 온 한국과 일본 영화의 위상은 주요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및 수상 기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0년부터 2026년 현재까지 세계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양국의 영화 데이터를 전수 분석해 시대를 관통하는 뚜렷한 라이벌 구도를 조명했다. 2000년대는 변방에 머물던 한국 영화가 세계의 중심부로 진입하며 일본의 오랜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건 시기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일본은 총 31편의 작품을 진출시켰으나 수상은 6편에 그쳤다. 반면 한국은 22편을 진출시켜 8편이 트로피를 거머쥐며 수상 확률에서 일본을 크게 앞섰다.
2004년은 한국 영화의 폭발력이 세계에 각인된 해로 꼽힌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한국 거장들의 전성시대를 알렸다. 3년 뒤인 2007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 최초 칸 연기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이 베를린 황금곰상을 차지하고,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자토이치(2003)’가 베니스 감독상을 받으며 맞불을 놨다.
2010년대는 양국의 대표 작가주의 감독들이 최고 권위의 상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인 시기였다. 2010년대 일본은 21편을 경쟁부문에 올려 5개 작품이 수상했고, 한국은 13편을 진출시켜 역시 5개의 트로피를 따내며 균형을 맞췄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2018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으며 한발 앞서갔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9년, 한국의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응수했고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까지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두 나라의 격돌은 칸·베를린·베니스를 넘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로도 이어졌다. ‘기생충’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4개 부문을 석권하며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그로부터 2년 뒤인 2022년 일본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로 응수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이 영화는 국제영화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작품상·감독상·각색상 후보에도 함께 올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일본 영화로 이름을 남겼다.
2020년대 들어 국제영화제 무대에서 벌어지는 한일전은 단순한 국가 대항전을 넘어 서로의 위상을 높이는 시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OTT 플랫폼의 일상화로 2030 세대의 콘텐츠 소비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양국 영화계의 협업도 전례 없이 활발해졌다. 일본의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 배우 송강호 등과 함께 연출한 한국 영화 ‘브로커(2022)’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후에도 ‘괴물(2023)’, ‘상자 속의 양(2026)’을 연이어 칸에 올리며 매년 세계 3대 영화제 무대에 이름을 올리는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최근 흐름만 놓고 보면 진출 편수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5월 열린 제79회 칸 영화제에서 일본은 경쟁부문에 3편을 동시에 올렸는데, 이는 2001년 제54회 칸 영화제 이후 25년 만에 일본 영화가 경쟁부문에 세 편을 진출시킨 기록이다. 반면 한국은 나홍진 감독의 ‘호프’ 단 한 편만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호프’는 상영 이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지만 끝내 수상에는 실패했다. 대신 이 해 칸에서 한국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남겼다. 박찬욱 감독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된 것인데 이는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으로는 1962년 일본의 후루카키 테츠로 전 NHK 회장, 2006년 홍콩의 왕가위 감독에 이은 세 번째 사례였다.
26년간의 누적 기록을 종합하면 양국의 엇갈린 강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2000년 이후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국 영화는 총 47편으로 이 중 19편이 수상해 무려 40.4%의 높은 수상 타율을 자랑했다. 반면 일본은 총 68편을 진출시켜 진출 편수에서는 한국을 크게 앞섰지만 수상은 17편(25.0%)에 머물렀다. 영화제별로 보면 다이내믹한 서사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선호하는 칸과 베를린에서는 한국이 우위를 점했다.
칸 영화제에서 한국은 총 22편 중 8편이 수상한 반면, 일본은 29편 중 7편 수상에 그쳤다. 베를린 영화제 역시 홍상수 감독의 연이은 수상을 바탕으로 한국이 15편 중 8편 수상이라는 독보적 성과를 냈다. 반면 정적인 미학과 철학적 깊이를 중시하는 베니스 영화제는 일본의 전통적인 텃밭이었다. 일본은 베니스에 무려 23편을 진출시켜 5편이 수상하며 물량 면에서 압도했다.
작품성 타율은 한국 압승, 경제성과 오스카 저력은 일본 ‘애니 IP’ 압도
수상 기록과 정반대의 그림이 펼쳐지는 곳이 글로벌 박스오피스와 할리우드의 심장부인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이다. 월드 박스오피스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경제적 성과에서는 일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00년 이후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일본 영화 68편이 벌어들인 글로벌 수익은 약 16억 9700만 달러(한화 약 2조 2500억 원)에 달했다. 반면 한국 영화 47편의 글로벌 수익 합산액은 약 5억 9700만 달러(한화 약 7900억 원)로, 진출작들의 높은 수상 타율과 무관하게 매출 규모에서는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극적인 매출 격차의 핵심 배경에는 일본 특유의 강력한 ‘애니메이션 IP(지식재산권)’ 파워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3대 영화제 상업적 성공에 그치지 않고세계 최고 권위의 상업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 무대까지 장악하며 경제적 가치를 입증했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동시 석권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약 3억 6000만 달러)’을 필두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리고 최근 2024년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은 예술적 인정과 천문학적 상업성을 동시에 잡았다.
물론 한국 영화도 아카데미에서 폭발적인 상업적, 비평적 성과를 거둔 바 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약 2억 6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한국 영화 전체 누적 수익의 절반가량을 견인했다. 이어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나리(2021)’, 각본상 후보에 오른 ‘패스트 라이브즈(2024)’ 등 한국계 이민자 서사가 오스카의 주목을 받으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기생충’과 같은 전무후무한 예외를 제외하면 매년 꾸준히 오스카 애니메이션 부문에 후보를 배출하며 안정적인 굿즈·판권 수익을 올리는 일본의 ‘IP 생태계’와 비교해 한국은 흥행의 변동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3대 영화제에서 보여준 ‘진출 편수와 애니메이션 실속의 일본’ 대 ‘수상 타율과 실사 영화 예술성의 한국’이라는 구도는 할리우드 오스카 무대와 글로벌 박스오피스에서도 명확하게 엇갈렸다. 최근 한국 영화계는 내수 극장 관객 수 감소로 손익분기점 달성이 어려워지자,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눈을 돌려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예술성과 상업성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계 시장에서 한일 양국의 영화 산업이 각자의 강점과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며 경제적 영토를 확장해 나갈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국제영화제 무대에서 한일 양국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거두는 성과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영화는 막대한 자본이 움직이는 대중 예술인 만큼 주요 영화제 초청과 수상은 자연스러운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져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제 수상이 반드시 개별 작품의 극장 흥행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 영화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후속 투자를 유치하고 영화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강력한 긍정적 시그널이 된다”며 “양국의 경쟁이 아시아 영화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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