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2030 여성들의 ‘자기관리’를 상징하는 운동으로 자리 잡았던 필라테스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비교적 비싼 수강료에도 체형 관리와 자세 교정 등을 이유로 회원들이 몰리면서 동네마다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들어섰지만, 최근에는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용 방식과 가격에 대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어린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필라테스 수업 이후 이용자가 직접 기구를 정리하는 문화다. 필라테스 수업이 끝나면 회원이 물티슈나 소독제를 이용해 자신이 사용한 리포머와 바렐, 체어 등을 직접 닦고 원래 상태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에는 다음 이용자를 위한 기본적인 운동 매너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이를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가격과 서비스의 문제로 바라보는 소비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필라테스는 일반적인 헬스장 이용권과 달리 강사의 지도를 받는 레슨 형태로 운영되는 데다 개인레슨의 경우 회당 수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내고 수업을 받으면서 기구 소독과 정리까지 회원이 직접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높은 만큼 수업뿐 아니라 시설 관리와 서비스 수준까지 가격에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높은 수강료에도 기구 정리와 소독을 직접 해야 하고 예약 변경이나 당일 취소에도 제약이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필라테스의 가격 대비 서비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필라테스 이용 문화를 비꼬는 이른바 ‘필라테스 시녀짓’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르데스크가 강남 일대 필라테스 센터를 직접 취재한 결과 1대1 개인레슨 1회 체험 가격은 최저 5만5000원에서 최고 8만원으로 나타났다. 2대1 듀엣 레슨의 경우 체험 가격은 1인 당 최저 5만원에서 최고 9만원 수준이었다. 일부 센터에서는 듀엣 레슨 특성상 2명이 함께 수업을 신청해야만 체험이 가능해 혼자서는 신청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
기구 정리뿐 아니라 예약과 취소 방식에 대해서도 불편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필라테스는 정해진 시간에 강사와 수업을 진행하는 특성상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센터별 규정에 따라 일정 시간 이후에는 예약 변경이나 취소가 어렵고 실제 수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용 횟수가 차감되기도 한다. 회당 수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이용 과정에서는 여러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가격 대비 서비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오랜 기간 필라테스를 이용해 온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는 필라테스 대신 다른 운동을 선택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거나 예약과 이용시간이 자유로운 헬스와 러닝, 수영 등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왕수영 씨(28·여)는 “예전에는 수업이 끝나면 당연히 기구를 닦아야 하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 달에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 매번 내가 소독하고 정리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친한 언니와 필라테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뒷정리뿐 아니라 당일 예약 취소가 어렵다는 점 등 가격에 비해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필라테스 대신 남자친구와 클라이밍이나 헬스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필라테스 수강생은 “8년 정도 자세 교정을 위해 필라테스를 꾸준히 했지만 최근에는 러닝과 수영으로 운동 종목을 바꿨다”며 “온라인에서 ‘필라테스 시녀짓’이라는 표현을 접한 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용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필라테스 자체가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가격이나 예약 방식, 이용 과정까지 따져보면 예전만큼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필라테스가 대중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다. 과거 일부 전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필라테스는 체형 관리와 자세 교정 등에 관심을 갖는 젊은 여성들이 늘면서 빠르게 대중화됐다. SNS를 통해 배우 박소담, 걸그룹 소녀시대 태연, 레드벨벳 웬디, 아이브 장원영 등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의 운동 모습이 공유된 것도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코로나19를 전후로 여성들 사이에서 몸매와 건강을 동시에 관리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필라테스는 대표적인 여성 운동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소수 인원이 참여하는 그룹수업부터 강사와 일대일로 진행하는 개인레슨까지 다양한 형태의 상품이 등장했고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센터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빠른 시장 확대는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최근에는 높은 수강료와 예약·취소 제약, 이용자가 직접 기구를 정리하는 관행 등에 부담을 느낀 일부 소비자들이 헬스와 러닝, 수영, 클라이밍 등 다른 운동으로 눈을 돌리는 모습까지 나타나면서 필라테스 업계의 회원 유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센터 폐업으로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필라테스 업체의 폐업으로 이용료를 돌려받지 못하거나 환급이 지연된 피해구제 신청은 2021년 11건에서 2022년 38건, 2023년 77건, 2024년 142건으로 증가했다. 불과 3년 만에 12.9배 늘어난 수치다. 전체 필라테스 피해구제 신청에서 폐업 관련 피해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7%에서 13.7%로 확대됐다.
필라테스를 포함한 관련 운동의 강습 경험 비율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생활체육 관련 강좌나 강습을 받아본 사람 가운데 ‘요가·필라테스·태보’ 강습 경험 비율은 2020년 20.3%에서 2021년 19.1%, 2022년 16.0%, 2023년 13.7%로 3년 연속 감소했다. 2020년과 비교하면 3년 만에 6.6%p 줄어든 수치다.
해당 종목들은 특히 여성의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 최근 1년간 요가·필라테스·태보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 12.8%, 남성 0.6%로 12.2%p의 격차를 보였다. 여성 참여도가 높은 종목군의 강습 경험 비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만큼 필라테스를 비롯한 관련 운동을 둘러싼 수요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필라테스를 둘러싼 논란을 단순히 기구를 누가 닦느냐의 문제로 보기보다 운동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예전부터 특정 운동이 유행하면 소비자가 해당 업계의 기존 이용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자신이 지불하는 가격에 어떤 서비스가 포함돼 있는지를 따지게 된다”며 “필라테스 역시 가격뿐 아니라 예약과 취소 규정, 시설 관리, 수업의 전문성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업체 간 서비스 경쟁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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