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식품 판매 현장에서 ‘명절 대목’의 온도 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전과 나물 등 완성된 명절음식을 판매하는 반찬가게는 주문 증가에 맞춰 전을 부칠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고 있지만 채소와 각종 식재료를 판매하는 전통시장 상인과 대형마트에서는 예전 같은 특수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차례상 전체를 직접 준비하는 가구가 줄고 필요한 음식만 소량 구매하는 소비가 늘면서 명절 수요가 원재료 중심에서 완제품·간편식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실제 시장에서는 부부가 먹을 전만 구매하는 고령층부터 귀성하지 않고 퇴근길에 나물과 산적을 사가는 20대 직장인까지 다양한 소비자들이 반찬가게를 찾고 있었다. 반면 같은 시장의 채소상에서는 명절을 앞두고도 손님이 평소보다 20~30%가량 늘어나는 수준에 그친다는 반응이 나왔다. 명절음식 소비 자체가 사라졌다기보다 직접 재료를 사서 대량으로 조리하는 방식에서 필요한 음식만 골라 사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업종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모습이다.
전·나물은 사서 먹고 차례상은 간소화…반찬가게로 몰리는 명절 수요
차례상을 직접 준비하는 가구가 줄어드는 흐름은 통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1일부터 26일까지 가구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 설문조사에서 올해 추석 차례를 지낼 계획이라는 응답은 27.3%였다. 보고서가 제시한 전년 수치인 40.4%보다 13.1%포인트 낮았다. 차례를 지낼 계획이 없다는 응답은 65.3%였으며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7.4%였다.
차례를 지내는 가구도 상차림을 줄이는 쪽에 무게를 뒀다. 차례 계획이 있는 응답자 가운데 50.9%는 전통 예법에 맞춰 간소하게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한다는 응답은 13.2%였으며 직접 만든 음식과 구매한 제품을 섞어 준비한다는 응답은 8.8%였다.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드는 대신 필요한 음식만 준비하거나 일부는 구매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시장 반찬가게는 추석을 앞두고 전을 부치는 인력을 추가로 투입했다. 가게 측은 평소보다 전 수요가 높아졌고 나물을 찾는 손님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러 종류를 대량으로 구매하기보다 전 몇 가지와 나물 한두 종류를 소분해 구매하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반찬가게를 찾은 이영화 씨(78·여)는 차례상 전체가 아니라 부부가 먹을 전만 구매했다. 이 씨는 “자식들도 몇 명 오지 않아 차례음식을 많은 양으로 만들 일이 없다”며 “남편과 둘이 먹을 전만 사서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려 한다”고 말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규모가 줄면서 많은 양의 음식을 직접 조리할 필요도 함께 줄었다는 설명이다.
귀성하지 않는 젊은 소비자들도 반찬가게를 찾았다. 오피스텔 인근 반찬가게에서 만난 김인하 씨(27·여)는 “고향까지 내려가기도 어렵고 부모님도 내려오지 말라고 해 이번 추석에는 가지 않는다”며 “명절 분위기는 느끼고 싶어 퇴근한 김에 나물과 산적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차례를 준비하지 않더라도 명절음식을 먹기 위해 필요한 품목만 따로 구매한 사례다.
구매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도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이유로 꼽혔다. 정희윤 씨(33·여)는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양만 판매한다는 점 때문에 반찬가게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전을 직접 만들려면 밀가루와 달걀, 고기, 채소 등을 각각 구입해야 하지만 완제품을 구매하면 필요한 종류와 양만 선택할 수 있어 음식이 남는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상인들도 이러한 소비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마포구 시장의 한 반찬가게 관계자는 과거에는 명절을 앞두고 여러 가족이 먹을 정도로 많은 양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손님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귀성하지 않거나 가족 모임 규모가 줄면서 소량 구매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절음식을 아예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비 방식이 ‘직접 조리’에서 ‘선택 구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만난 엄윤진 씨(69·여) 역시 “설은 몰라도 추석에는 차례를 잘 지내지 않게 됐다”며 “추석이라고 전이나 나물 같은 차례음식만 먹는 분위기도 아니다”고 말했다. 차례 여부와 명절음식 소비가 반드시 연결되지 않고 각 가정의 생활방식과 취향에 따라 필요한 메뉴만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명절음식을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모둠전·소고기육전·송편·잡채 등 제수용 간편식을 행사 상품으로 내놓고 편의점에서도 떡갈비와 전·송편을 담은 도시락부터 잡채·전 묶음 상품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차례상 전체를 마련하기 위한 대량 장보기보다 한두 끼 명절음식을 간편하게 해결하려는 수요를 겨냥한 상품들이다.
직접 만들어 먹는 방식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송편 만들기 키트를 구매한 김서정 씨(42·여)는 “명절이라고 음식을 크게 준비하지는 않는다”며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만들어보는 경험을 시켜주려고 송편 만들기 키트를 샀다”고 말했다. 여러 음식을 대량으로 조리하기보다 특정 음식 하나를 골라 가족과 함께 체험하는 방식으로 명절음식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공덕시장에서 20년간 채소를 판매해온 서옥순 씨(79·여)는 “이제 명절이라고 대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평소 손님이 10명 온다면 그나마 2~3명 더 오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명절을 앞두고 평소보다 손님이 늘기는 하지만 오랜 기간 장사하며 경험했던 과거의 추석 대목과 비교하면 체감되는 증가 폭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과거에는 명절을 앞두고 전이나 나물, 잡채 등을 만들기 위해 각종 채소와 식재료를 한꺼번에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완성된 음식을 필요한 만큼 구매하면서 원재료 판매 현장의 명절 특수가 약해지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반찬가게에서 전과 나물을 사가는 손님이 늘더라도 그 수요가 같은 시장의 채소상이나 식재료 판매점 매출 증가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추석 식품 소비가 시장과 마트 전체가 일제히 특수를 누리던 구조에서 품목과 판매 방식에 따라 수요가 갈리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족 구성원이 줄고 차례 문화가 간소화되면서 식재료를 대량 구매해 여러 음식을 직접 만드는 수요는 약해진 반면 전과 나물, 산적처럼 명절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완제품을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려는 수요는 두드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차례 문화의 간소화가 맞물리면서 명절음식을 직접 조리하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효율적으로 구매하려는 경향이 점차 정착되고 있다”며 “과거처럼 노동 집중적인 대량 조리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생활 양식에 맞춘 구매 행태가 확산된 것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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