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이달 1일부터 근로자와 구직자 보호를 위한 노동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부담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이번 제도 개편은 임금·복리후생 등 근로자 처우부터 채용과 고객 응대 등 기업의 인사·노무관리 책임을 전방위로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일본에서 인력을 고용하거나 사업장을 운영하는 국내 기업들은 인건비 증가뿐 아니라 새로운 관리체계 구축에 따른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임금, 복지, 채용, 직원보호 등 책임경영 강화…日 진출 韓 기업 비용 부담 확대 가능성
1일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이날부터 단시간·기간제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개정 가이드라인’이 시행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제도 시행 5년이 지난 것을 계기로 지난해 2월 노동정책심의회 논의를 거쳐 올해 4월 관련 시행규칙과 지침을 개정하고 올 10월부터 현장에 적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번 개정의 가장 큰 변화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처우 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한층 세분화됐다는 점이다. 개정 가이드라인에는 ▲상여금 ▲퇴직수당 ▲무사고수당 ▲가족수당 ▲주택수당 ▲복리후생시설 ▲병가 ▲여름·겨울휴가 ▲포상 등 개별 처우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 정규직과 단시간·기간제 근로자를 함께 고용하는 국내 기업의 현지법인도 기존 임금·복리후생 체계의 재점검이 필요해졌다. 기본급뿐 아니라 상여금과 퇴직수당, 각종 수당 및 복리후생에서 발생하는 처우 차이가 업무 내용과 책임, 배치변경 범위 등에 비춰 합리적인지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지급하지 않던 상여·수당을 지급하거나 복리후생 적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생기면 추가적인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노무관리 책임도 대폭 강화됐다. 이날부터 개정 노동시책종합추진법도 함께 시행됨에 따라 일본 내 모든 사업주는 소속 직원의 ‘카스하라(カスハラ)’나 성희롱 피해 등을 예방하기 위한 고용관리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개정 전까지 기업의 자율적인 대응 영역에 머물렀던 카스하라 대책은 이번 제도 시행으로 사업주의 법적 의무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카스하라는 ‘커스터머 하라스먼트(Customer Harassment)’를 줄인 일본식 표현으로 고객이나 거래 상대방이 근로자에게 폭언·협박을 하거나 사회통념상 허용 범위를 넘어선 요구를 하는 행위를 뜻한다.
기업의 근로자 보호 의무도 기존 근로자를 넘어 인턴 직원과 채용 지원자까지 확대됐다. 1일부터 일본 내 모든 기업들은 구직자 등에 대한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보호 대상에 일반 채용 지원자를 비롯해 취업설명회 참가자, 인턴, 교육·간호실습생, OB·OG 방문자 등이 포함됐다. OB·OG 방문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관심 기업에 재직 중인 같은 학교 출신 선배를 만나 업무나 채용 과정 등에 관한 정보를 얻는 일본의 취업활동을 뜻한다. 대면뿐 아니라 SNS 등 온라인을 통한 구직활동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사업주는 구직자의 성희롱을 금지한다는 방침과 위반자에 대한 조치 기준을 마련해 임직원에게 알리고 피해 사실을 접수할 수 있는 별도 상담창구를 운영해야 한다.
파견근로자에 대한 정보 제공과 평가 절차도 강화됐다. 앞으로 파견업체는 근로자를 다른 회사에 파견할 때 정규직 등과 비교해 임금·복리후생 등 처우에 차이가 있을 경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로자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 파견근로자가 실제 근무하는 회사도 파견업체가 해당 근로자의 업무 성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근무 상황 등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평가 과정에 협력해야 한다.
재계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 시행된 일련의 제도 변화로 인해 일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비용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단시간·기간제 근로자의 상여·퇴직수당 등 처우 조정은 기업에 따라 직접적인 인건비 증가 요인이 될 수 있고, 카스하라와 구직자 성희롱 대책은 상담창구와 교육·보고체계 구축 등 간접적인 노무관리 비용을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 파견근로자의 설명·평가 절차까지 강화되다 보니 채용·현장관리 체계의 재정비도 불가피해졌다.
현재 일본에는 국내 주요 대기업과 금융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KB국민·하나·우리은행이 도쿄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신한은행은 현지법인 SBJ은행을 통해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롯데 등 주요 기업도 현지에서 판매·서비스·유통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본에 새롭게 진출하는 한국 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일본 현지에 진출한 한국 신규법인 수는 2022년 158개에서 2023년 269개, 2024년 314개 등로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35.4% 늘어난 218개가 새로 설립됐다. 지난해 한국의 대일 직접투자액 역시 17억4600만달러로 전년 대비 약 2.7배 증가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 복리후생 등 비정규직 처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는 직접적인 인건비 부담이 발생할 수 있고, 상담창구 운영이나 내부 대응체계 구축 등에서도 추가적인 관리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바뀐 제도를 단순한 노동 규제 강화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지 인력 운용과 임금·복리후생 체계 전반을 사전에 점검해 비용 증가 요인과 노무 리스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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